[굿모닝경제=이종서 EU정책연구소 원장] 유럽의 통합과정은 지난 20년 동안 발전하였음에도 회원국들의 상대적으로 낮은 경제성장, 유로존 위기, 이민과 난민 문제, EU 리더십 문제, EU 내에서의 모순과 차별 증가, 브렉시트, 유럽 정체성에 대한 질문, 유럽에 대한 회의주의 상승, 유럽 시민 간의 EU 합법성 약화, 글로벌 경제에서 EU의 위치 등 갑작스러운 도전에 직면했다.

이종서 EU정책연구소 원장
이종서 EU정책연구소 원장

폴란드 출신의 토마스 그로스(Tomasz Grzegorz Grosse) 교수는 EU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초국가주의 개념의 후퇴를 가져왔고 정부간주의의 적실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와 같은 남부 유럽 국가의 역할이 약화되면서 EU 전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독일, 프랑스의 권한과 영향력이 높아지는 것을 보면 설득력이 있다.

무엇보다 EU가 초국가 기구인 집행위원회 중심의 범유럽 공통의 가치와 초국가 정체성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흔들리고 있다. 

브렉시트(Brexit)는 유럽통합 혹은 분열현상에 대한 다양한 이론적 논의를 가능케 하는 사례인 동시에 유럽위원회와 회원국의 권한 배분을 둘러싼 논쟁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중요한 사건이다.

무엇보다 영국의 국내정치가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발생했기 때문에 와해의 과정을 한 가지 이론으로 설명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EU에 대한 담론은 주로 경제적 합리성과 국가의 정체성이라는 두 축에서 형성된다. 경제적 합리성은 유럽공동체 초기부터 지금까지 이루어온 주권국가 간 초국가적 통합의 이면에 항상 존재해왔다. 국가 정체성 문제는 국경통제와 같은 자주권 행사와 관련한 정책에서 나타난다. 

경제적 합리성과 유럽연합 회원국이라는 정체성은 특히 경기 침체로 실직과 탈산업화라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던 회원국가 노동자 계층의 반감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경제 이슈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계속되는 이민자들의 대량유입에 대한 반감이었다. 이민자들이 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오랜 세월에 걸쳐 확립된 문화적 정체성을 훼손한다고 여겨진 것이다.

대부분의 유럽연합 회원국은 정권을 잡는데는 실패했지만 반이민과 반유럽연합을 내세우는 정당들이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자유당, 프랑스의 국민전선,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 이탈리아 동맹, 스페인의 복스당, 오스트리아의 자유당이 대표적이다. 

20세기 정치에서는 경제 이슈를 중심으로 좌파-우파의 스펙트럼이 형성된바, 좌파는 더 확실한 평등을 요구하고 우파는 더 많은 자유를 요구했다. 진보정치는 노동자와 노조를 중심으로, 더 나은 사회 보장과 경제적 재분배를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반면 우파는 정부의 크기를 줄여 경제적 간섭을 최소화하고 민간 부문을 확대하는 것에 주력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세계 많은 지역에서 과거 평등을 중심으로 한 스펙트럼이 정체성을 중심으로 하는 스펙트럼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좌파는 경제적 평등의 확대보다는 흑인, 이민자, 여성, 히스패닉, 성소수자(LGBT), 난민 등 다양한 소외된 집단의 권익을 증진하는 데 더 힘을 쏟고 있다. 한편, 우파는 대개 인종이나 민족성, 또는 종교와 연결된 전통적인 정체성을 보호하려는 애국자로 스스로를 재정의한다.

우리는 유럽의 통합과정에서 나타난 브렉시트와 같은 통합의 역행 원인을 정확하게 판단해야만 한다. 즉 국가의 물질적 이득도 중요하지만 개인과 국가를 움직이는 다른 동기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저출산과 인구고령화 문제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지금과 같은 출생률이라면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 제조업 및 서비스업 상당 부분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채우게 될 것이다.

그들이 한국 사회에 동화되지 않는다면 삶의 질 향상 여부를 떠나서 그들만의 정체성 정치로 인한 한국사회의 분열은 불 보듯 뻔하다. 이에 차기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다문화정책과 동화정책간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 이종서 국제경제/통상 정책연구위원은 현재 EU정책연구소 원장이며, 한국유럽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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