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경제=이종서 EU정책연구소 원장] 유럽연합(EU) 회원국이면서 EU와 심한 갈등을 빚고 있는 폴란드 헌법재판소가 지난 10월7일 EU가 자국의 사법개혁안에 대해 제재명령을 내린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종서 EU정책연구소 원장
이종서 EU정책연구소 원장

사실상 폴란드 헌법이 EU법에 우선한다고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에 EU는 폴란드의 정상회의 투표권 제한, COVID-19 회복자금 570억 유로(약 78조원)의 지급 유예 등을 거론하며 경고했지만 집권당인 ‘법과정의당(PiS)’은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EU는 EU 조약 등이 개별 회원국 법보다 우위에 있다는 원칙을 갖고 있으며, EU사법재판소(ECJ)도 판례를 통해 EU가 'EU 법의 지배에 기초한 공동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 폴란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폴렉시트'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진 않지만 나머지 회원국들에 미치는 영향은 작지 않으며 EU의 정치적 통합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EU는 다양성과 복합성의 특징을 가진 독특한 질서와 구조를 가진 통합체이다. 2009년 리스본조약 발효를 통해 EU가 법적 실체가 된 이후 현재 27개 회원국에 인구가 4억5000만명에 이르는 거대한 통합체이다. EU는 그동안 여러 위기에 봉착했었다. 정치·경제적으로 공동운명이 강화되면서 회원국의 문제는 곧 EU의 문제가 되었다.

EU는 지역간 격차가 ‘조화로운 삶’이라는 EU의 궁극적 목표에 위배된다고 생각하여 회원국간 경제적 격차를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특히 지역개발기금(ERDF)과 결속기금(ESF)은 회원국 간의 균형과 발전을 위한 수단이 되어 왔다.

2010년 12월, 튀니지를 시발점으로 2011년 리비아와 시리아 내전으로 발생한 유럽의 난민 분산 수용 결정은 EU 회원국간 갈등이 표면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EU 집행위원회의 결정사항에 회원국들이 강하게 반대하면서 회원국들간 분열이 시작됐다. 물론 난민사태가 전적인 원인은 아니었지만 영국의 경우 하나의 요인이 되어 브렉시트(Brexit) 투표를 통해 EU 탈퇴를 결정하였다.

EU는 서유럽 국가들과의 경제적 격차를 줄이기 위해 지역개발기금을 통해 폴란드를 포함한 동유럽 회원국들에게 상당한 지원과 혜택을 주었다. 헝가리는 올해까지 EU로부터 250억 유로의 경제개발 자금을 받았다. 폴란드는 EU결속기금의 36.6%인 852억 유로를 배정받았다.

폴란드는 난민 수용에 따른 자국 내 고용 창출에 미치는 영향, 난민 복지시스템 부담 등으로 EU가 제시한 강제할당은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이라는 여론이 형성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들 국가는 모두 로마 카톨릭교가 국교이다. 즉 이슬람 공동체와 공존했던 경험이 전무하다.

프랑스, 독일, 영국, 네덜란드는 국내 이슬람 출신 인구비율이 10% 정도이지만,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내 이슬람 출신 인구비율은 0.2% 이내이다. 역사적으로 이슬람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국가가 이슬람 이민자들과 융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슬람 난민을 수용하라는 EU의 일방적 결정은 폴란드의 EU에 대한 거부감을 누적시켰다.

또한 EU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그린딜에 대해서도 폴란드는 2050 목표 시점에 동의하지 않아 끝내 다른 회원국들과의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폴란드는 무엇보다 전력생산의 80% 이상을 석탄에 의존하고 있어 기후중립으로의 전환은 2070년이나 돼야 가능하다고 EU와 맞서고 있다.

폴란드는 2030년까지 화력발전 비중을 60% 이상 감소시킬 계획이지만 많은 폴란드 전역 총 3,042개의 탄광과 이를 폐쇄하면서 대량의 구조적 실업이 발생할 것으로 예견되므로, 이에 따른 EU의 자금 지원을 요구하고 있어 EU와의 합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EU는 크로아티아가 2013년 EU에 가입한 이후 알바니아, 보스니아, 코소보,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세르비아 등 발칸 6개국의 가입과 관련한 구체적인 일정표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서유럽 회원국을 중심으로 브렉시트 이후 EU를 ‘핵심 그룹’과‘ 주변 그룹’으로 구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에 폴란드를 포함하여 비세그라드(Visegrad) 4국(폴란드,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은 동유럽 국가들의 권리와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이 초국가적 통합과 국가적 통합간의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한 EU의 정치적 통합은 멀고도 먼 미래가 될 것이다.

■ 이종서 국제경제/통상 정책연구위원은 현재 EU정책연구소 원장이며, 한국유럽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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