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경제=이종서 국제경제/통상 정책연구위원] 유럽연합(EU)이 지난 40년 동안 추구하고자 하는 통합 목표에 타격을 가한 첫 번째 사례는 1990년대 발칸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EU는 미국의 협조 없이는 분쟁을 처리할 수가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종서 국제경제/통상 정책연구위원
이종서 국제경제/통상 정책연구위원

두 번째는 유로존 위기로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몇몇 국가에서 심각한 경제난을 초래했고, 채권국과 채무국 사이의 상당한 분노를 부채질했으며, 엄청난 시간과 자본을 소비했다. 

세 번째는 2015년 EU 내 깊은 분열을 드러낸 극우 민족주의 운동과 난민 분산수용정책 거부로 헝가리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an)과 같은 우파 권위주의 지도자들에게 힘을 실어준 난민 사태였다.

네 번째는 가장 최근의 사태로 브렉시트(Brexit)였다. 

이번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는 다섯 번째 사례가 될 가능성이 있다. 회원국 지도자들은 일단 아프간 난민 위기에 대한 공동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난민 수용 문제는 국익과 관련된 문제이므로 한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나토(NATO) 탈퇴에 대한 거듭된 위협은 유럽의 중심부에 충격을 주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나토 회원국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 않다고 불평은 했지만, 그들 중 누구도 동맹에서 실제로 탈퇴하겠다는 위협을 한 적은 없었다. 

트럼프와는 다를 것이라고 예상되었던 바이든은 실제로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철수시켰다. EU가 상징하는 가치와 지난 수년간 이룬 많은 성과에 감탄하는 EU 시민들에게 이러한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운 것이다. 상당수의 유럽인은 아프간 사태를 포함한 유럽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이 영국이 EU를 떠나기로 한 것을 훨씬 넘어서는 파급효과를 줄 수도 있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문제는 EU가 안보에 있어서 그동안 종속변수였다는 데 있다. EU가 일반적으로 한목소리를 내는 무역협상과는 별개로, 안보에 있어서 EU는 아직도 통일된 정책을 수립하고 필요한 능력으로 정책을 뒷받침하는 데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공동안보 방위정책(CSDP)’의 바람직함에 대해서는 모든 회원국이 동의한다. 대외관계청(the European External Actin Service)을 신설하고 고위외교대표를 공식 임명하는 등 통합의 모습을 갖추려 했다. 

그러나 결국 회원국들은 자신들의 외교정책 특권을 주장하며 대외관계청이나 고위외교대표가 회의를 열고 연설하는 것 이상의 능력을 갖추는 것에는 거부했다. 외교정책, 특히 국가안보 정책에 관한 한 오늘날 EU는 종종 이해관계가 분산되고 공동으로 정책을 성사시키는데 필요한 강력함이 부족한 주권 국가들의 집합체로 남아 있다. 

EU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웃에 대한 접근에 완벽하게 동의하지 않은 한 공동안보 방위정책의 실행은 요원하다. EU가 직면한 문제는 단지 이러한 이해의 충돌보다 더 크다. 

유럽은 인구학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현재 평균 45세인 가장 늙은 대륙이며 2035년까지 약 5000만 명의 노동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동부 유럽에서 이 문제는 경제적 기회를 찾아 서유럽으로 떠나므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다. 크로아티아는 2013년 이후 인구의 5%가 감소했고 불가리아는 현재인구 대비 2050년까지 23%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젊은 층이 적다는 것은 경제 성장 둔화를 의미하며 이는 곧 더 많은 이민을 촉진한다. 점점 노년층이 증가한다는 것은 경제가 생산성이 떨어지는 사회가 될 수밖에 없고 국가는 의료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노년층은 또한 더 종교적이고 민족주의적인 호소에 더욱 공감하는 특징을 갖는다. 즉 노년층은 EU의 자유주의적 비전에 덜 헌신하는 경향이 있다. 

작년 미국 경제가 전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에 불과했다. 1950년대, 60년대, 70년대, 심지어 8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이 자국 시장을 다른 나라들에게 개방하고 간접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데 버겁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미국이 지닌 역량이 한계를 보인다.

따라서 동맹 개념의 변화와 함께 대서양 동반자 관계의 미래는 인구감소와 노령화의 속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미국은 점점 고령화되고 정치적으로 분열된 유럽을 보호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일 가치가 없고 강하고 활기차고 응집력 있는 유럽은 방어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국의 출산율은 2년 연속 198개국 중 198등이다. 한국의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부는 출산율이 한미 동맹의 개념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이번 아프간 사태의 원인에 대해 철저한 분석을 해야만 할 것이다.

■ 이종서 국제경제/통상 정책연구위원은 현재 EU정책연구소 원장이며, 한국유럽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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