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경제=조성돈 前한국원자력환경공단 경영관리본부장]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32개 국가에서 442기(2020년 기준)의 원전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의 공통적 난제는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문제다. 가히 전 지구적 딜레마(dilemma)이다. 이에 우주처분론, 해양처분론 등 과학자들이 아이디어차원으로 여러 방안들을 내놓았으나 크게 3가지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조성돈 前한국원자력환경공단 경영관리본부장
조성돈 前한국원자력환경공단 경영관리본부장

먼저 세계적으로 가장 힘을 얻고 있는 방식은 ‘심지층처분론’이다. 지하 500미터 이상의 깊은 땅속에 영구 처분해 인간계와 격리시키는 방식이다. 미국, 핀란드, 스웨덴, 독일, 스위스 등 10개국에서 채택하고 있다. 이들 국가 중 핀란드와 스웨덴 2개 국가만이 부지를 확보하고 영구처분시설을 건설 중이다. 원전 대국인 미국의 경우도 1987년 네바다주 유카마운틴지역에 부지를 선정하고 무려 40조라는 막대한 자금을 들여 추진하는 도중 지역주민의 반대로 부지 승인이 취소됐다. 그만큼 사회적 수용성이 어려운 문제이다. 

두 번째로 재처리 후 처분방식이다. 프랑스, 영국, 인도, 러시아, 중국, 일본 6개국에서 채택하고 있다. 일본을 제외하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로 재처리를 통해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Pu)을 추출할 수 있어 이들 국가 이외에 핵확산 방지차원에서 국제협약으로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를 금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원자력협정을 통해 군사적 목적이 아닌 건식재처리기술(파이로프로세싱)을 연구 중에 있으나 사용후핵연료 처분을 위한 근본적 대책은 아니다.
 
세번째로 결정 유보(Wait & See)정책이다. 말 그대로 세계의 기술개발 추이 및 국제정치 등 상황을 고려하여 정책을 유보하고 있는 경우다. 우리나라의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은 2016년 이전까지 ‘결정유보’였다. 그러나 2016년 정부에서‘제1차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우리나라도 영구처분방식의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수립했다. 부지확보에 12년,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부지 건설 24년, 이를 통해 2053년 영구처분시설을 확보하자는 계획이다. 

지난 정부에서 법적근거 마련을 위해‘고준위 방사성폐기물관리시설 부지선정절차 및 유치지역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아쉽게도 제정되지 못했다. 현 정부들어 고리1호기 폐로와 월성1호기 영구정지 및 탄소중립선언에 따른 신재생 에너지의 확대추세에도 불구하고 향후 5~60년간은 원자력이 여전히 주 에너지원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을 볼 때 우리나라 원전의 안전운영을 위해서는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확실한 관리대책마련이 시급하게 요구된다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결정에 대해 더 이상 정권차원의 폭탄 돌리기식 책임회피 행태는 지양되어야 한다. 지난 1차, 2차 공론화의 공통된 의견중의 하나가 미래세대에게 책임을 전가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국민적 의견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현 정부 임기 내에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법을 제정해야 한다. 

둘째, 향후 사용후핵연료 발생차단이라는 측면에서 월성원전(2, 3, 4호기)은 설계수명이후 더 이상의 재가동은 없어야 한다. 탈(脫)원전을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월성원전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는 과학계가 추진하는 사용후핵연료의 독성과 부피감용을 위한 재처리 공정(파이로 프로세싱) 대상도 아니며, 월성원전을 폐쇄하기 전에는 사용후핵연료 발생량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나라가 영구처분 방식을 채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년전부터 한수원과 원자력 계는 사용후핵연료 포화로 원전가동이 중단될 수 있다는 경고를 해왔다. 마땅히 이에 대한 대책으로 포화가 가장 빨리 도래하고 사용후핵연료가 가장 많이 발생하며 설계수명이 종료된 월성원전 1호기를 폐쇄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필요도 없었다. 이런 취지가 아니었음에도 월성원전 1호기 영구정지는 바람직한 결정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의 핵심은 투명한 부지선정 절차이다. 이제부터라도 공개적인 지질조사 추진과 관련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스웨덴의 경우 부지선정을 위해 무려 30여 년간 전 국토 지질조사를 통해 부지선정을 했다. 관련정보의 공개, 자료제공의 투명성 등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킬 때만이 국민이 동의하는 부지선정이라는 성공적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2019년 제2차 사용후핵연료 공론화가 있었다. 공론화의 주목적은 2016년 7월 수립된‘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 기본계획’이 국민, 원전소재 지역주민, 시민사회단체 등 다양한 분야의 의견수렴이 부족하였다는 지적에 따라 이를 재검토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지난 1차 공론화결과의 방향성과 원칙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즉 우리나라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의 방향성이 더욱 확실해 졌다는 의미다. 

이제 어느 정부, 어느 누가 담당해도 해외 선진사례 등 어떤 방법론으로 추진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좌고우면(左顧右眄)과 더 이상의 시간 낭비는 불필요하다. 정부, 원전소재 지역주민, 시민사회단체, 학계 대표가 참여하는 범사회적 기구를 구성해서 부지선정의 원칙과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합의점을 찾을 때까지. 이것이 사용후핵연료 관리대책의 시작이라 할 것이다.

■ 조성돈 칼럼니스트는 중·저준위 원전폐기물을 관리, 처분하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서 대외협력팀장과 전략기획실장으로 업무를 담당하고 경영관리본부장을 역임하였다. 재직시절 경주방폐장준공식 TF단장으로 방폐장준공과 고준위공론화준비지원단장으로 고준위폐기물의 처분을 위한 공론화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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