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경제=조성돈 前한국원자력환경공단 경영관리본부장] 1978년 고리원전 1호기를 시작으로 우리 산업의 동맥으로서 크나큰 성과를 안겨준 원자력에너지는 우리에게 사용후핵연료라는 큰 고민거리를 안겨주었다. 지난 5월 전직 과기부 장관을 지낸 한 인사는 사용후핵연료에 대해 '엄청난 자산이자 국가적 보물'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럼 사용후핵연료는 자원일까 폐기물일까? 

조성돈 前한국원자력환경공단 경영관리본부장
조성돈 前한국원자력환경공단 경영관리본부장

이는 우리나라의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정책을 통해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다. 2016년 '제1차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영구처분방식의 관리정책을 수립한 바 있다.

또한 사용후핵연료 중 절반 이상이 파이로프로세싱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대상물질도 아니어서 현실적으로도 사용후핵연료는 영구처분해야 할 폐기물로 규정하는 게 타당하다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원자력안전법(제2조18항)에 근거 '사용후핵연료가 원자력진흥위원회의 심의의결에 따라 폐기하기로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방폐물이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핵 비확산을 위한 국제적 협력과 사용후핵연료를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재처리 또는 재활용을 위한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 여건에서 굳이 자원으로써의 가치만을 주장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고 하겠다. 
 
최근 사용후핵연료와 관련해 이를 재활용하는 기술인 파이로프로세싱이 원자력계의 핫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는 지난 2011년 부터 한ㆍ미 간의 공동연구로 진행되어 지난 9월1일 한ㆍ미 원자력연료주기공동연구운영위원회(JFCS)가 최종 승인했다.
 
고무적인 것은 우리나라가 1975년 원전도입 시 약속했던 핵연료 재처리 금지와 핵연료 농축 금지 선언 이후 40여년 만에 핵연료 재활용의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원전국가로서 핵연료주기를 완성하는 명실상부한 원전대국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사용후핵연료을 재처리하여 고독성 물질인 세슘(Cs), 스트론튬(Sr) 등을 분리 후 약 300년간 지하시설에 별도 보관하고, 플루토늄, 마이너악티나이드 등 초우라늄 물질(TRU)을 추출하여 고속로라는 신개념의 원자로에서 연료로 소진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사용후핵연료의 부피를 약 20분의 1, 처분장 면적을 100분의 1, 독성을 1,000분의 1까지 줄이겠다고 한다. 

만약 이런 놀라운 결과들이 검증이 되고 상용화된다면 전 지구적 딜레마인 사용후핵연료 처분대책에 획기적인 방안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현재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재활용을 위한 파이로프로세싱 시설을 2025년까지, 소듐냉각고속로를 2028년까지 준공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럼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하기 위한 파이로프로세싱과 고속로 기술은 우리나라가 개발한 독자적인 신기술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미 미국은 1940년대부터 연구를 해오다 90년대 이후 사실상 중단상태이며,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여러 국가에서 연구 중이거나 개발에 실패했고, 러시아만이 고속로 1기를 운영 중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원자력계는 왜 파이로프로세싱에 대해 그렇게 집착(all in)하고 있나? 이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단지 ‘연구를 위한 연구’일 뿐이라고 폄하하기도 하나 짐작컨대 과학자로서 우리나라 원자력계의 영원한 숙제인 핵연료재처리문제를 간접적인 방식(재활용)으로나마 해결해 보려는 성취동기의 발로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그러나 현재 원자력연구원이 연구 타당성으로 제시한 경제성과 사용후핵연료 부피감용 효과 등에 대해 국내외 원자력계에서 비판과 의구심을 갖고 있고, 그들의 주장에 나름의 논리와 설득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사유에서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해 본다.

첫째, 연구결과의 비공개다. 정보제공의 투명성 차원에서 이미 부정적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국의 산업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대한 연구결과를 두고 비공개하자는 발상 자체가 향후 연구결과 수용성에 큰 문제로 부각될 것이다. 즉시 연구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둘째, 파이로프로세싱 공정을 위해서는 파이로(재활용)시설, 핵연료제조시설, 고속로, 사용후핵연료저장시설(150톤 규모)이 일체로 한 곳에 위치해야 하는데 부지선정과 각각 시설의 까다로운 인허가 기준 충족과 주민수용성 확보 등 그간의 사례로 볼 때 수 십년이 소요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셋째, 본 파이로-고속로 프로젝트가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원자력연구원은 경주시와 MOU를 통해 경주에 파이로-소듐고속로 실증설비를 구축하겠다고 한다. 이는 중저준위방폐장유치지역(경주)에 사용후핵연료관련시설 건설제한을 규정한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유치지역에 관한 특별법(제18조: 사용후핵연료 관련 시설의 건설 제한)에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어 향후 사업추진에 큰 장애요인이 될 것이다.

넷째, 파이로프로세싱 공정을 통해 추출된 세슘과 스트론튬 등 고독성 물질을 약 300년간 어떻게 안전보관하며, 처분장을 확보할 것이가 하는 문제이다. 현재 고준위방폐물 처분시설과 부지 확보대책을 볼 때 답이 없는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기 발생된 사용후핵연료의 절반에 가까운 중수로(월성 1,2,3,4 호기)에서 발생되는 사용후핵연료는 파이로프로세싱 대상이 아니어서 사용후핵연료의 부피를 20분의 1, 처분장 면적을 100분의 1로 줄인다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는 점이다. 

지난 9월29일 과학기술정통부는 파이로ㆍ SFR연구개발적정성검토위원회를 구성해서 사용후핵연료 처리기술 연구개발사업에 대한 전문가 검토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검토위원회는 진영논리, 정치논리보다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기술적 타당성과 경제성에 대해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특히 반대진영에서 제기한 ①파이로프로세싱 실증시설 건설의 총 소요비용, ② 파이로프로세싱 공정에 따른 고준위방폐물 및 중저준위방폐물 발생현황, ③고독성 물질인 세슘과 스트론튬 안전관리방안, ④소듐고속로의 안전성 ⑤실증시설 건설지역 주민수용성 여부 등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최근 월성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포화로 인해 원전가동을 중단해야 할 위기를 가까스로 넘긴바 있다. 파이로프로세싱을 통해 사용후핵연료를 획기적으로 감용시킬 수 있다고 하나 이를 실증하고 상용화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아마도 수 십년이 소요될 것이라는 것은 이미 국내 사례에서도 충분히 예견되는 일이다.

이러한 여건임에도 아직 검증도 안된 미완의 기술인 파이로프로세싱이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할 최선의 대책이라는 주장은 현실성이 없으며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정책 결정에 혼선을 줄 뿐이다. 

우리나라의 고준위방성폐기물관리정책은 '결정유보(Wait and See)’가 아닌 ‘심지층 영구처분’이다. 앞으로 파이로-SFR연구개발적정성검토위원회가 파이로프로세싱 연구결과에 대해 어떠한 결정을 내린다 해도 고준위방폐장 부지확보 대책수립에 혼선과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우리나라 원자력계의 영원한 숙제이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우리나라를 핵연료재처리 국가로 허용해주지 않는 이상 우리나라의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정책은 재처리(재활용)도 아닌, 관망(Wait and See)도 아닌, 심지층 영구처분방식을 채택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할 것이다.

■ 조성돈 칼럼니스트는 중·저준위 원전폐기물을 관리, 처분하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서 대외협력팀장과 전략기획실장으로 업무를 담당하고 경영관리본부장을 역임하였다. 재직시절 경주방폐장준공식 TF 단장으로 방폐장준공과 고준위공론화준비지원단장으로 고준위폐기물의 처분을 위한 공론화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저작권자 © 굿모닝경제 - 경제인의 나라, 경제인의 아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