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경제=조성돈 前한국원자력환경공단 경영관리본부장] 최근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관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을 둘러싸고 정부와 원전 주변 지역 간의 대립과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 나날이 넘쳐나는 사용후핵연료를 최종 처분할 ‘고준위 방폐장’ 입지선정 문제는 과거 안면도나 부안사태처럼 폭발성을 지니고 있어 소통과 합의를 통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이다.
 

조성돈 前한국원자력환경공단 경영관리본부장
조성돈 前한국원자력환경공단 경영관리본부장

지난 2013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사용후핵연료에 관한 사회적 공론화가 추진되었다. 두 번의 공론화 과정을 통해 사용후핵연료를 다룰 관련법을 마련했고 국회 심의 절차만 남겨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더욱 첨예화되고 있다. 

어떤 요인들에 의해 이런 갈등이 지속되는 것일까? 사용후핵연료와 관련된 갈등의 저변에는 환경오염, 주민의 안전과 건강 문제, 입지 주변 지역주민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특별희생)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해 있지만 크게 네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사용후핵연료 관련 시설이 님비(NIMBY)시설이라는 점이다. 1986년 체르노빌과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사용후핵연료가 원자력과 방사성폐기물이라는 특성이 혼합되어 여타 다른 위험과는 본질에서 다른 ‘사고 발생 시 두렵고, 재앙스러운’ 부정적인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둘째, 정부의 일방적(top-down)인 입지선정 방식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동안 정부는 DAD(Decide-Announce-Defend, 결정-통보-방어) 방식으로 정책을 추진해 왔고, 대부분의 비공개 진행 과정이 지역주민과 이해당사자들의 격렬한 반대와 갈등을 불러오는 경우가 빈번하였다. 일방적인 목표 설정 및 입지선정 후 주민들에게 주입식 교육과 홍보를 통해 설득하고 무마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폐쇄적인 정책추진이 결국은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을 낳는 계기가 되었다.

셋째, 사회 경제적 측면의 형평성 문제이다. 경제학적으로 입지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해당 시설로 인한 편익과 비용이 불일치된다는 점이다(sandman,1986). 일반적으로 원전과 방폐장 같은 비 선호시설 설치에 따른 편익은 국민 전체 또는 해당 지역 전체에 고르게 분포되나, 이에 따른 부정적 영향(비용)은 입지 주변 지역주민에게 집중된다(정지범, 2010). 즉, 입지 지역주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특별희생을 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마지막으로 진영 논리의 폐해이다. 진영 논리는 객관성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논리성을 부정한다. 그저 자신이 속한 진영의 주장에만 매몰되어 반대를 위한 반대로 국민을 양자택일의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원자력 갈등 유발의 시작은 대부분이 진영 논리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요인들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해 나아간다면 우리 사회의 최대 난제인 사용후핵연료와 관련한 사회적 갈등 또한 시간은 걸리겠지만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보다 앞서 고준위 방폐장 입지를 성공적으로 결정한 선진 국가들의 제도적 장치와 성공 요인을 벤치마킹하여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한국식 입지 선정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

원전 국가 중 사용후핵연료의 최종처분을 위한 고준위 방폐장 입지선정에 성공한 나라는 핀란드, 스웨덴 두 나라가 대표적이다. 두 나라 모두 원전과 사용후핵연료와 관련해 사회적 수용성이 매우 높다. 

핀란드의 경우, 원자력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는 월등하게 높아 핀란드식 예외주의(Finnis exceptionalism)라는 용어를 만들어 낼 만큼 다른 국가들과 비교된다. 특히, 2011년 세계 최초로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의 최종처분장의 입지(Olkiluoto섬, Onkalo)를 확정하고 건설 중에 있다는 점이다. 핀란드 정부는 부지공모방식이 아닌 중앙정부의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후보지를 선정했으나 지방자치단체에 거부권을 부여하여 입지 후보 지역의 주민반발을 최소화했다.

방폐장 건설계획부터 2015년 최종 건설 허가까지 무려 30여 년이 걸렸다. 이러한 성공 요인에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광범위한 시민참여원칙을 마련하여 시민들에 대한 의견수렴을 의무화했고, 원자력 에너지법(Nuclear Stipulation Act)을 만들어 투명한 정보공개와 공청회 등을 통해 모든 단계에서 지역주민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함으로써 정책 결정의 연착륙을 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스웨덴도 핀란드와 같이 고준위 방폐장 입지 갈등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국가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스웨덴은 초기에 사용후핵연료의 처분에 대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1976년 반핵 성향의 정부 출범 후 원전의 허가 전에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안전한 처분장소와 방법을 증명할 것을 요구하였고, 1977년 원자력발전 규정법(Nuclear Stipulation Act)을 제정하고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처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초기에는 정부 주도의 DAD 방식으로 고준위 방폐장 부지선정을 위해 각 지역 내 부지조사와 시험굴착을 추진하였으나 격렬한 주민저항에 부딪혔고, 결국은 부지조사를 중단했다. 이러한 반발을 경험하면서 지역수용성과 자발성을 우선시하고 모든 정보의 공개와 함께 유치 희망 지역을 대상으로 주민투표를 통해 수용성을 확보 후 최종입지를 결정하는 부지선정 공모제로 전환하면서 2009년 고준위 방폐장 입지로 Osthammar의 Forsmark를 최종적으로 선정했다. 
 
위 두 나라의 입지선정 방식을 보면 핀란드는 중앙정부의 부지조사, 스웨덴은 부지공모 방식으로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하지만 투명한 정보공개와 주민참여, 지방정부로의 권한위임, 합리적 보상방안, 그리고 정부 정책의 신뢰 회복 등 그 나라 현실에 맞는 정책 수단을 통해 갈등과 위기를 성공 요인으로 극복한 점은 향후 고준위 방폐장 부지를 확보해야 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를 반영하여 우리나라도 고준위 방폐장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사항을 제안해 본다.

첫째, 시민참여 보장과 의견수렴 의무화이다. 두 나라 모두 초기에는 환경단체와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을 경험하면서 기존의 일방적인 DAD 방식을 탈피하고 광범위한 시민참여를 유도했다. 핀란드의 경우 시민참여의 원칙을 제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원자력 에너지법, 환경영향평가절차법에 정보공개와 공청회를 의무화하였고, 시민참여 정책프로그램을 국가적인 프로젝트로 추진하였다. 중앙정부 부지조사방식의 단점을 시민참여와 의견수렴 의무화로 극복하였다.

스웨덴의 경우, 부지 타당성 조사에 있어 지질학적 평가도 중요한지만 지역수용성과 자발성에 우선을 두었다. 자발적인 조사에 관심을 보인 지역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최종적으로 주민투표를 통한 수용성과 지질학적 안전성을 근간으로 최종입지를 결정하도록 하였다. 지역참여와 사회적 수용성 바탕으로 부지선정을 추진한 것이다.

둘째, 중앙정부의 지방정부에 대한 권한위임이다. 입지 결정의 권한을 지방의회 거부권 부여로 지방정부의 승인 없이는 고준위 방폐장 건설이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와 같은 시설입지 이후의 지역갈등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셋째, 입지 지역에 대한 합리적인 경제 활성화 대책이다. 핀란드는 원자력 시설입지 지역에 대한 금전적 보상은 없다. 지방세수 증대, 사회간접자본 투자, 지역주민고용 등 간접적인 정책 수단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다. 스웨덴도 부지공모를 추진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유치지역이 실패한 지역에도 경제 활성화를 위한 보상(75%)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즉, 유치를 실패한 지역에도 충분한 지원을 함으로써 부지공모의 경쟁을 유도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에 관한 법’에 따라 기피 시설에 대한 보상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고, 경주 방폐장 지원 사례도 있어 향후 고준위 방폐장 유치에 있어 이를 바꾸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나, 스웨덴의 사례처럼 유치에 실패한 지역에도 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원대책도 좋은 솔루션이라고 본다.
  
넷째, 정부와 원자력 정책에 대한 국민의 높은 신뢰이다. 이는 OECD 회원국 30개 국가의 갈등 지수에서도 명확히 나타난다. 두 나라는 갈등 지수가 가장 낮고, 갈등관리 지수도 핀란드 1위, 스웨덴이 4위이다. UN의 세계 행복보고서에서 이들 국가가 행복한 이유로 사회적 신뢰가 매우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러한 정부에 대한 신뢰가 원자력 정책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정부가 되새겨야 할 부분이다.

이제 우리에게도 사용후핵연료로 인한 갈등 해소와 해법을 마련할 기회가 다가왔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 그것이다. 현재 정부와 지역주민은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문제의 본질(현재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처리방안이 없으며, 임시저장의 개념이 모호함)을 서로 외면하고 있다.

원전 주변 지역주민의 고충과 우려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이번 국회에 상정된 법안은 우리나라 원자력계의 현실을 감안한 불가피한 차선책이라 할 수 있다. 관련법을 제정하여 이를 근거로 원전 지역주민들의 요구사항이 반영된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하루라도 빨리 고준위 방폐장 확보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지역의 입장에서도 맞는 일이 될 것이다. 

법이 제정된다 해도 무려 30여 년 후에나 방폐장이 운영되는 만큼 더 이상의 관망과 지연은 불필요하며, 혹여 미진한 내용이 있다면 법 제정 후 개정하면 된다. 정부도 지역주민의 입장에 서서 전향적인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

법 제정 이후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 수립에 있어, 원전 주변 지역주민들이 요구하는 원전 내 임시 저장시설에 대한 구체적인 사업 추진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공론화하고, 이를 기본계획에 반영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이것만이 사용후핵연료와 관련된 사회적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으며, 정부의 원자력 정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조성돈 칼럼니스트는 중·저준위 원전폐기물을 관리, 처분하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서 대외협력팀장과 전략기획실장으로 업무를 담당하고 경영관리본부장을 역임했다. 재직시절 경주방폐장준공식 TF 단장으로 방폐장준공과 고준위공론화준비지원단장으로 고준위폐기물의 처분을 위한 공론화의 역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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