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경제=조성돈 前한국원자력환경공단 경영관리본부장] 지난 9월 우리나라 원자력계의 최대 난제인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규정할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법’이 의원입법으로 국회에 제출됐다.

조성돈 前한국원자력환경공단 경영관리본부장
조성돈 前한국원자력환경공단 경영관리본부장

현재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는 2022년 월성원전을 시작(맥스터 증설시 29년)으로 한빛(영광)은 29년, 고리는 31년, 한울(울진)은 30년을 기점으로 사용후핵연료 저장조가 포화되어 원전을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2016년 7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관리시설 부지선정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시설 부지선정절차 및 유치지역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은 법안명에서도 드러나듯이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보다는 부지선정 절차와 유치지역 지원에 중점을 두었다. 이 법안은 부지선정 과정에 있어 지역주민 의견수렴 절차가 반영되어 있지 않아 재정지원을 통해 부지를 선정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난과 함께 정책수립 과정의 투명성과 객관성 문제제기로 시간만 끌다가 결국은 국회 임기만료에 따라 자동폐기 된바 있다. 

올해 새롭게 제출된 법률제정안은 2016년 정부입법(안)을 토대로 시민사회단체 및 원전소재지역의 의견을 수렴하여 지난 정부안보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을 담고 있어 내용면에서 더욱 진일보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법률안은 주요 내용을 보면 우선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의 관리주체 변경이 눈에 띈다. 관리정책의 공정한 추진을 위해 산업부 주도에서 국무총리실 산하의 독립적인 추진체계로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를 설립토록 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원자력진흥위원회로부터 사용후핵연료 처분 권한을 이관받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고준위방폐물 정책의 공론화, 부지선정, 기술개발 등 포괄적인 고준위방폐물 관리업무를 맡게 된다. 

또한 중간저장과 영구처분시설의 부지선정절차를 규정하고, 지난 정부입법안에 미비했던 유치지역의 의회 동의와 주민투표  근거조항을 마련하여 지역수용성을 높였다. 이외에도 현재 법률적 근거가 없이 설치 운영되던 원전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의 설치 근거조항을 포함시켜 최종처분시설을 포함한 관리시설이 완공되면 지체 없이 관리시설로 이전하고, 시설 설치 시 위원회의 승인을 얻도록 하여 사업자의 자의적 증설을 제한하고 있다. 특히 방폐물관리사업자로 하여금 기술개발, 인력양성 등을 담당하게 함으로써 방폐물관리의 일원화를 꾀하고 있다. 

이처럼 지난번 정부안에 비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사업 추진을 위한 전반적인 사항이 보완되었고 법률안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고심한 노력이 엿보이지만 몇 가지 사안에 대해 정리와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첫째, 우리나라 방사성폐기물관리의 행정체계 일원화가 필요하다. 동법 제정안이 입법화될 경우 사실상 방사성폐기물 관리주체의 이원화로 정책시행 과정의 혼선과 이에 따른 갈등이 예견된다.

현재 방폐물관리 전담기관은 산업부와 원자력환경공단이다. 동법 제정안은 고준위방폐물관리의 권한위임에 있어 ‘처리권한’은 기존대로 원자력진흥위원회에, ‘처분권한’은 신설되는 고준위방폐물관리위원회로 이원화하고 있다. 또 고준위방폐물관리는 국무총리실에, 중·저준위방폐물관리는 산업부로 양분하게 된다.

고준위방폐물에 대한 연구기술개발은 과학기술부(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사실상 주도하고 있어 각 기관 간에 정책의 혼선과 갈등은 자명한 일이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처리와 처분권한을 단일화 하는 우리나라 방폐물관리 행정체계의 일원화도 적극 검토되어야 할 문제라 본다.

둘째, 현재 가장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원전부지 내 저장시설에 관한 문제이다. 그동안 시민사회단체들은 원전부지 내 저장시설이 법률적 근거가 없이 운영되고, 임시저장과 중간저장의 기술적 차이가 없으므로 이를 구분할 실익이 없다는 주장을 제기함에 따라 이번 제정안에 포함시켰다고 사료된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규정이 사실상 원전부지 내 저장시설을 중간저장시설로 기정사실화 하려는 의도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는 원전부지 내 저장을 언제까지 운영하겠다는 예측이 불가능하고, 단기간 내에 중간저장시설이 건설되리라는 보장도 없다는데 기인한다.

향후 원전부지 내 저장기간의 애매모호함으로 인해 동 시설이 ‘관계시설’이냐, ‘관련시설’이냐의 소모적 논쟁의 촉발로 고준위방폐물관리사업 추진에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번 기회에 원전부지 내 저장시설에 대한 법적 정의를 전향적으로 재검토 할 필요성이 있다하겠다.  

셋째, 방사성폐기물관리에 관한 법률체계의 문제이다. 현재 방사성폐기물관리에 대한 일반적인 사항은 ‘방사성폐기물관리법’에 규정되어 있어 새로운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법이 입법화될 경우 두 법률 상호간에 중복 및 충돌 우려가 있는 만큼 중·저준위방폐물과 고준위방폐물관리를 이원화 할 것인지, 아니면 현행 법률안을 보완 개정할 것인가에 대한 검토도 필요한 부분이다. 

넷째, 지하연구시설(URL)의 정의에 관한 문제이다. 제정안은 연구시설의 정의를 ‘처분시설이 건설될 부지 내의 지하환경에서 연구·실증하는 시설’로 규정하여 최종처분 부지선정전 연구시설 부지선정 활동을 어렵게 하는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개별조항에 ‘처분시설 부지 선정전 처분시설의 지하환경과 유사한 사전 검증용 지하연구시설을 건설할 수 있다’는 조항을 두었으나 연구시설 부지가 곧 최종처분시설 부지로 낙점될 가능성으로 해당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지하연구시설의 정의를 처분시설부지 내로 정의한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마지막으로 방사성폐기물관리사업자의 위상에 대한 문제이다. 이번 법률 제정안은 지난번 정부입법안(사용후공단 신설)과는 달리 고준위방폐물관리사업자로 한국원자력환경공단으로 명확화하고 있다.

법이 제정된다면 관리사업자는 10년 이상을 계획기간으로 하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기반조성계획’을 5년마다 수립 ㆍ 실행하는 명실상부한 방사성폐기물관리전문기관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앞으로 수립될 기반조성계획의 주요내용들은 고준위방폐물관리에 필요한 최종처분시설건설 계획과 기술개발계획 및 인력양성계획 등 고준위방폐물관리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이 포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여러 기관에 분산되어 있는 고준위방폐물관련 기능들을 관리사업자로 하여금 수행할 수 있도록 일원화시켜야 한다. 특히‘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이 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서 관리하는 ‘방사성폐기물관리기금’의 연구개발사업비를 기획, 평가, 관리하면서 공단으로 하여금 간접 수탁케 하는 기형적 R&D수행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즉 ‘방사성폐기물관리기금’에서 나오는 연구개발사업비는 관리사업자(공단)가 직접 연구, 기술개발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원자력연구원의 방폐물기술개발 연구인력과 일부 기능을 관리사업자로 일원화하는 방안도 검토되어야 한다. 현재 고준위방폐물 기술개발과 관련하여 원자력환경공단, 한수원, 원자력연구원 등이 각기 독자적으로 수행하고 있어 중복투자 우려 및 예산 낭비의 요소가 많은 만큼 이에 대한 일원화도 적극 모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2013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있었다. 시민사회단체들의 참여는 저조했으나 이를 통해 향후 우리나라의 사용후핵연료관리정책의 방향성과 원칙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첫 번째가 미래세대에 책임을 전가시키지 말아야한다는 것이었고, 두번째가 사용후핵연료를 처분하기 위해서 중간저장과 영구처분부지를 확보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사용후핵연료문제는 친원전, 탈원전의 진영논리로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우려되는 것은 정권말기로 분명히 새 정부로 넘기자는 주장과 이해관계에 있는 기관들의 로비가 예상되나 이제 더 이상의 관망과 지연은 불필요하다. 혹 미진한 내용이 있다면 법 제정 후 개정안을 내면된다. 이제 1986년 울진ㆍ영덕ㆍ영일지역에 처분장 부지선정을 착수한 이래로 무려 아홉 차례에 걸친 방폐장 부지선정 노력이 있은지 35년만에 고준위방폐장 부지확보를 위한 근거법이 마련되기 직전이다.

여·야는 국가의 백년대계를 마련한다는 사명감을 갖고‘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법’제정에 만전을 기해 주길 바란다.

■ 조성돈 칼럼니스트는 중·저준위 원전폐기물을 관리, 처분하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서 대외협력팀장과 전략기획실장으로 업무를 담당하고 경영관리본부장을 역임했다. 재직시절 경주방폐장준공식 TF 단장으로 방폐장준공과 고준위공론화준비지원단장으로 고준위폐기물의 처분을 위한 공론화의 역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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