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앞의 평등원칙 훼손…경제력 평가와 객관성 확보 어려움 등 현실적 문제 산적

우리는 '소득이 많거나 경제적 여건이 좋은 사람은 벌금도 많이 내야 한다'는 말을 과연 사회 정의에 부합한 정당한 주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pixabay>

[한국정책신문=노호섭 기자]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 일반적으로 소득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가 그렇지 못한 이에 비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다면 이러한 논리를 확장해 벌금 부과 기준에 적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즉 '소득이 많거나 경제적 여건이 좋은 사람은 벌금도 많이 내야 한다'는 말을 우리는 과연 사회 정의에 부합한 정당한 주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 처벌의 목적은 재발 방지…부자에게 벌금형은 껌값?

최근 들어 소득이 많은 이에게는 더 무거운 벌금을 부과하자는 이른바 '소득비례 차등벌금제'의 도입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이같은 차등벌금제 등을 골자로 한 '서민을 위한 공정 사법 구현' 공약을 내걸었다.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동일한 액수의 벌금이 아닌 동일한 부담을 지도록 벌금제도를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월급이 200만원인 사람에게 폭행죄로 100만원의 벌금이 선고됐다면 1000만원을 버는 사람에게는 같은 죄에 대해 5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식이다.  

같은 이유로 차등벌금제 도입을 찬성하는 이들은 형벌의 존재 목적을 상기시키며 같은 액수의 벌금이 부자들에게는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범죄자에 대해 국가가 나서 형벌을 주는 이유는 그러한 범법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동시에 이들에게 상당한 타격이 될 수 있는 경제적 불이익을 주어 다시는 그러한 행위를 못하도록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다시 말해 모든 이에게 일률적으로 부과되는 벌금은 개인의 소득 및 재산 수준에 따라 형벌로서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 돈 많으면 벌도 무겁게 받는다?…형법 대원칙·헌법에도 반해

대한민국 형법 제51조는 범법 행위에 대한 양형 기준으로 범인의 연령·성행·지능·환경·피해자에 대한 관계·범행의 동기·수단과 결과·범행 후의 정황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본인이 한 행위'에 대해서만 책임지도록 하는 '형벌의 대원칙'을 명시한 것으로 형량을 결정함에 있어 당사자의 경제적인 여건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내포돼 있다. 

이에 법조계 일부에서는 범죄와 관련 없이 축적한 부를 양형 기준에 반영하는 것은 법적으로 올바른 정의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함께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제 11조 1항에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등 차등벌금제의 도입으로 돈이 많다고 더 무거운 벌을 받는 것은 법치주의의 형평성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차등벌금제 도입과 관련해 "헌법 소원 등이 잇따를 수밖에 없는 논쟁적 사안"이라며 "벌금형에 경제적 능력을 고려하는 것은 양형에 있어 경제적 능력의 의미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문제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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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득·재산 구분 및 산정은 어떻게…현실 여건 어려워 

형벌의 원칙에 반하거나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원론적인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차등벌금제 도입에는 여러 가지 현실적 어려움이 따른다. 특히 피고인의 경제적 능력을 정확하게 추정해낼 수 있느냐가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다.

차등벌금제에 찬성하는 측은  국가장학금 선정 기준처럼 과세자료를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직장인들의 소득파악률은 93%에 달하는 등 비교적 투명한 편이지만 자영업자의 경우 72%에 그치는 등 기존 과세 자료의 구멍이 커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핀란드·노르웨이·덴마크·스위스 등 이미 차등벌금제를 도입한 일부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우리나라에 비해 경제 투명성이 뛰어나 소득산정에 있어 커다란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소득을 숨기거나 허위로 신고하는 등 각종 탈세를 비롯한 지하경제의 활성화로 인해 정확한 소득산정에 제한이 따를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실제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회계 투명성은 61개국 중 꼴찌에 그치기도 했다.

벌금 부과시 그 산정 기준을 '소득'에 둘 것인지 보유하고 있는 '재산'에 둘 것인지도 현실적 고민거리다. 

쉽게 말해 고정적 근로소득이 없어 명목상 소득은 없지만 막대한 재산을 보유한 경우와, 반대로 재산이 없거나 적지만 월소득이 많은 전문직의 경우 읻르??nbsp;대한 벌금을 어떻게 책정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이밖에도 벌금 부과의 기준이 될 소득산정을 둘러싼 소송이 빗발칠 것으로 보이는 등 불필요한 사회적·경제적 손실이 예상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단순히 재정적 여건을 통해 형벌의 실효성을 판단하는 것은 문제를 너무 간단히 해결하려는 시도"라며 "구체적으로 얼마의 부담이 서로 같은 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법으로 획일적으로 규정하는 것보다 현재 법에서 정해진 벌금의 한도 내에서 판사들이 피고인의 경제적 능력을 감안해 양형을 정하는 것도 대안으로 고려해 볼만하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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