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취임 이후 이어온 무재해 행진 '마감'
노동부, 산업재해수습본부 꾸려 중대재해법 위반 여부 조사
피해자·유족에 고개 숙여 사과…"재발방지 대책 마련할 것"

20일 오전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에쓰오일에서 후세인 알 카타니 CEO가 전날 발생한 폭발 화재 사고에 대한 사과문 발표에 앞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연합]
20일 오전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에쓰오일에서 후세인 알 카타니 CEO가 전날 발생한 폭발 화재 사고에 대한 사과문 발표에 앞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연합]

S-OIL(에쓰오일)의 무사고 행진이 ‘940일’에서 멈췄다. 후세인 알 카타니 최고경영자(CEO)가 취임한 이후 단 한 건의 물적·인적사고 없이 안전 경영을 이어왔으나, 1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울산공장 사고로 안전 시스템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일 울산소방본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8시 51분께 폭발과 함께 화재가 시작됐으며, 이날 정오에 초진됐다. 소방당국은 불길이 되살아나는 상황에 대비해 잔불을 정리하면서 화재를 완전히 진화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12시간 이상 지속된 화재로 협력업체 직원 1명이 사망했고, 원·하청 근로자 9명이 다쳤다. 소방당국은 부상자 9명 중 4명을 중상, 5명을 경상으로 분류했다. 이들은 대부분 화상 환자로 확인됐다.

울산소방본부는 “탱크와 배관 내부의 가연성 가스를 모두 제거하는 작업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소방당국은 불이 완전히 꺼지는 대로 정확한 피해 규모와 화재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정부당국도 사태 파악에 돌입했다.

고용노동부는 산업재해수습본부를 구성해 에쓰오일의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다.

노동부의 중대재해 대응 지침에 따르면 동일한 사업장에서 3명 이상 사망하거나 5명 이상 다친 경우, 대형 화재·폭발·붕괴사고가 발생한 경우 산업재해수습본부를 꾸려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재 사망사고 발생 시 사업주를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사업주가 처벌을 피하도록 사업장 안전에 만전을 기하면 사망 사고가 줄어들고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전 정부에서 법안이 만들어졌지만 계속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 1월 27일 법 시행 직후에는 경기도 양주시 석재 채취장에서 노동자 3명이 매몰돼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고, 현대제철에서도 3월에 사망 사고가 발생해 대표가 입건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인 올해 1분기 산업재해 사망자는 모두 157명으로 작년 동기보다 8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폭 줄어들긴 했지만 통계상 여전히 많은 노동자가 산업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사망한 근로자에 대한 애도를 표하고 부상자의 회복 지원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또 신속히 사고를 수습하고 원인을 규명할 것을 지시했다.

19일 오후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공단 에쓰오일 울산공장에서 폭발로 대형 화재가 발생해 20일 오전까지 진화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9일 오후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공단 에쓰오일 울산공장에서 폭발로 대형 화재가 발생해 20일 오전까지 진화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명 피해까지 발생한 대형 사고로 에쓰오일의 안전 시스템 재정비가 불가피해졌다.

알 카타니 CEO는 2019년 6월 취임 이후 회사의 핵심 추진 과제로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 문화 구축과 무재해 1000만 인시(근로자들의 근로 시간을 모두 더한 것) 달성’을 제시하고 최적의 안전 관리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해 안전 경영을 진두지휘해왔다.

알 카타니 CEO는 전사 안전관리위원회와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신설하고, 분야별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안전 타운홀 미팅, 현장 안전 점검 등 안전 정책을 주도했다. 또 사내의 모든 회의를 반드시 안전 관련 모두발언으로 시작하도록 의무화하고, SNS를 활용한 ‘안전 지킴이’ 밴드를 운영해 다양한 정보를 임직원들에게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등 안전 문화를 공고히 정착시켰다.

회사 측도 “안전을 ‘모든 의사결정과 행동의 기본이 되는 최우선 가치’로 천명하고 CEO를 비롯한 전 임직원의 의지를 바탕으로 안전 가치 수호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부터 임직원과 협력업체 직원의 안전을 위해 선제적·적극적인 안전·보건·환경 정책을 가동해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에쓰오일은 지난해 12월 20일 무재해 1000만 인시를 달성했다. 울산공장, 저유소 임직원 2200여명이 총 791일간 사고 없이 공장을 운영해 1980년 울산공장 가동 이후 최장 기간 무재해 기록을 세운 것.

당시 알 카타니 CEO는 “단일 공장 세계 5위 규모의 초대형 정유 석유화학 복합설비를 운영하면서 2년 이상 단 한 건의 사고 없이 무재해 대기록을 유지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사례가 드문 성과”라며 “안전·보건·환경 분야에서 이룩한 성과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 지속 가능한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임직원들의 이런 노력으로 불구하고 지난 18일까지 기록을 이어온 에쓰오일은 이번 화재로 무사고 행진을 940일에서 멈추게 됐다.

20일 오전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에쓰오일에서 후세인 알 카타니 CEO를 비롯한 임직원들이 전날 발생한 폭발 화재 사고에 대해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일 오전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에쓰오일에서 후세인 알 카타니 CEO를 비롯한 임직원들이 전날 발생한 폭발 화재 사고에 대해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알 카타니 CEO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사망 직원의 유가족에게 애도를 표함과 동시에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고인께 깊은 애도와 사죄의 말씀 올린다. 유가족들께도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부상 당한 작업자들과 주변 지역주민들께도 사죄드린다. 피해 입은 분들이 최상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고개 숙였다.

이어 “이번 일에 무거운 책임감을 통감하고 사고 수습과 정확한 원인 규명을 위해 관계당국에 최대한 협조하겠다. 피해가 확산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사태 수습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다짐했다.

사고가 난 공장 시설은 화재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운영을 중단한다.

알 카타니 CEO는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동안 보유 재고와 국내외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해 석유제품의 내수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의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굿모닝경제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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