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 '인체 무해성 검증되지 않았다'는 연구 보고서 제품 출시 이전 확보한 듯

옥시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다음으로 많은 피해자를 낸 애경의 '가습기 메이트' 제품 라벨 <뉴스1>

[한국정책신문=한행우 기자]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가 두차례나 구속을 피해간 가운데 애경이 ‘가습기 메이트’의 인체 무해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연구 보고서를 확보하고도 제품을 출시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예고되고 있다. 

그간 애경은 단순 판매자로서 원료물질 유해성 여부를 알 수 없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검찰 조사 결과 제품 출시 이전 원료 유해성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애경이 ‘가습기 메이트’ 출시(2002년 9월) 이전 SK케미칼로부터 ‘가습기살균제의 흡입독성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 보고서는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이 국내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한 1994년 당시 서울대 이영순 교수팀이 진행한 유해성 실험 결과를 담고 있다. 당시 연구팀은 ‘가습기 살균제 성분으로 인해 (실험용 쥐의) 백혈구 수가 변화하는 것을 확인했다’며 ‘유해성 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유공은 추가 연구를 통한 안전성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최종 보고서가 나오기도 전인 1994년 11월 ‘가습기 메이트’ 판매에 나섰다. 유공의 가습기 살균제 사업 부문을 인수한 SK케미칼 역시 이 보고서를 통해 인체 유해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별다른 조치 없이 제품을 판매한 혐의로 애경과 함께 수사선상에 올라있다. 

2013년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자 SK가 태스크포스를 꾸려 서울대 실험보고서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사실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애경 역시 이 보고서를 갖고 있었으나 2016년 조직적으로 인멸한 정황이 포착됐다. 

검찰은 애경산업이 가습기 메이트의 유해 가능성을 알고도 ‘인체에 무해’하다고 표시·광고하면서 판매한 행위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의 주요 근거로 보고 있다. 또 검찰은 애경산업이 판매뿐 아니라 제조에도 개입한 정황이 있다고 보고 있다. 

반면 애경 측은 SK케미칼이 원료물질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주지 않아 유해성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으며 전적인 책임은 제조사인 SK에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법원은 두 번의 영장실질심사에서 검찰이 청구한 영장을 기각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3월26일 가습기살균제 출시·판매 관련 의사결정 전반을 책임진 안용찬 애경산업 전 대표에 대해 처음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안 전 대표는 애경그룹 장영신 회장의 사위로 오너일가다. 1995년부터 2017년까지 애경 대표이사를 지냈으며 지난해 12월까지는 그룹 내 제주항공 부회장직을 맡는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서울중앙지법 송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3월30일 안 전 대표에 대해 “본건 제품 출시와 관련한 피의자의 주의의무 위반여부 및 그 정도나 결과 발생에 대한 책임의 범위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안 전 대표는 영장실질심사 하루 전 송 전담판사의 고교 동문이자 ‘A급 전관’을 변호인단에 투입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검찰은 보강 수사를 통해 지난달인 4월28일 영장을 재청구했지만 이 마저도 최종 기각됐다. 28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단체가 “’만들어진 제품을 판매한 죄밖에 없다’는 애경 주장은 너무나 무책임하고 가벼운 변명”이라며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등 힘을 보탰으나 결과를 바꾸지는 못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연합’은 “애경이 영장심사에서 ‘피해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고 주장하겠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고도 강조했다. 애경이 국정감사 직전 피해자들을 만나기 시작해 압수수색이 이뤄질 때까지 관계를 유지했으나 안 전 대표의 구속영장이 기각될 즈음 완전 소통을 단절했다는 것.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신종열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5월1일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의 범위와 내용을 고려하면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 또 한 번 영장을 기각했다.  

2011년까지 9년간 판매된 ‘가습기 메이트’는 옥시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다음으로 많은 피해자를 낸 제품이다.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에 사용된 PHMG·PGH는 2011년 11월 일찌감치 ‘폐 섬유화 유발’ 등 유해성이 인정돼 이 원료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하거나 판매한 이들이 처벌받았다. 

그러나 ‘가습기 메이트’에 사용된 CMIT·MIT는 유해성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간 제조사인 SK와 판매사인 애경·이마트 등이 처벌을 피해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CMIT·MIT의 유해성에 대한 학계 연구 결과가 축적되고 환경부가 지난해 11월 유해성 연구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재수사가 시작됐다. 

이후 검찰은 애경이 제품을 판매했을 뿐 아니라 제조 과정에도 깊숙이 개입한 흔적을 다수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안 전 대표 구속 뒤 SK케미칼 윗선에 대한 조사를 이어 나간다는 방침이었다. 

SK의 경우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대표와 김창근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의장 등이 가습기 메이트가 제조·판매된 당시 SK케미칼 대표이사를 맡았다. 그러나 최근 두차례의 영장 기각으로 가습기 살균제 재수사에 속도를 내던 검찰 수사가 난항을 겪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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