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 내려놓겠다" 선언했지만 탈세 의혹 이어 차명주식 재판까지

이웅렬 코오롱그룹 전 회장

[한국정책신문=한행우 기자] “그동안 ‘금수저’를 꽉 물고 있느라 입을 앙 다물었습니다. 이빨이 다 금이 간 듯합니다. 이제 그 특권도, 책임감도 내려놓습니다.”-이웅렬 코오롱그룹 전 회장

‘깜짝 은퇴’를 선언하며 금수저를 내려놓겠다고 천명한 이웅렬 코오롱 전 회장이 180억원 규모의 차명주식으로 재판에 넘겨지면서 빈축을 사고 있다.  

15일 검찰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이웅렬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 차명 주식 보유 사실을 숨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조사부(부장 최호영)는 전날인 14일 이 전 회장을 자본시장법·금융실명제법·독점규제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

이 전 회장은 부친인 고(故)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이 별세하면서 남긴 계열사 코오롱생명과학 주식 38만주를 차명으로 보유하면서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주식의 가치는 이동찬 명예회장이 별세한 2014년 11월8일 기준 주당 4만8450원으로 금액으로 환산하면 총 184억원에 달한다. 

15일 현재 코오롱생명과학 주가는 7만4200원이다. 현재가치를 감안, 1주당 7만원으로 계산하면 260억원으로 불어난다. 

이 전 회장은 대주주로서 주식 보유 상황을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2015~2018년까지 보유하고 있던 차명주식을 본인 보유분에 포함하지 않고 거짓보고를 했다 덜미를 잡혔다. 

대주주 양도소득세를 회피할 목적으로 차명주식을 거래한 사실도 확인됐다. 2015~2016년 차명주식 4만주를 매도해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도 받고 있다.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고발 내용을 검토한 뒤 참고인 및 이 전 회장 등에 대한 조사를 거쳤다. 이후 주식 흐름 과정에서 이 전 회장이 보고 의무를 위반한 점 등이 입증된다고 판단, 불구속기소 결정을 내린 것이다. 

다만 검찰은 이 전 회장이 조세 포탈을 함으로써 조세범처벌법을 위반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차명 재산을 상속받은 뒤 차명 상태를 유지하고 세금을 신고하지 않았단 점만으로는 범죄 성립에 필요한 ‘적극적 은닉 행위’가 성립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감안해서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11월28일 돌연 은퇴를 선언, 재계 안팎을 놀라게 했었다. 당시 그는 사내 인트라넷에 올린 ‘임직원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특별하게 살아온 건 인정하지만 그만큼 무거운 책임을 느꼈다’는 취지의 글을 남겨 주목받았다. 

대기업 회장의 소탈하고 진솔한 면모에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진 것. 그러나 갑작스러운 은퇴를 둘러싸고 건강 상 문제나 정경유착 스캔들 등 다른 내막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적지 않았다.

이 전 회장의 퇴임인사 약 1주일여 후인 지난해 12월4일 상속세 탈세 혐의에 대한 본격적인 검찰 수사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 전 회장의 ‘아름다운 은퇴’도 빛이 바래졌다. 

코오롱그룹 측은 별 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미 이 전 회장이 회사 경영에서 손을 뗀 만큼 일종의 ‘선 긋기’로 풀이된다.

한 관계자는 “(회사 차원에서 마련된) 특별한 입장은 없다”고만 짧게 답했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재벌가의 차명주식·계좌에 대한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실제 지난해 11월말에는 수년간 공정거래위원회 캐비넷에서 잠자고 있던 대기업 주식·계열사 허위신고 사건들을 검찰이 재조사해 이명희 신세계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을 줄줄이 재판에 넘긴 사례가 있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 구상엽)는 이명희 신세계 회장을 비롯,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정창선 중흥건설 회장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벌금 1억원에 약식기소했다. 

또 신세계그룹 계열사 3곳과 롯데그룹 계열사 9곳, 한라그룹 계열사 1곳도 같은 혐의로 기소했다. 지난해 4월에는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차명주식을 신고하지 않은 혐의로 벌금 1억원을 선고받기도 했다.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주식·차명계좌가 수면 위로 드러난 이후 관련된 행정·사법적 조치가 본격화하고 있다”며 “그간 행정당국이 금융실명제 정착 노력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을 받아 온 게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또 “지금까지 차명계좌·주식 문제는 우리 기업들의 문화라고 할 정도로 흔한 경우였다”며 “이런 조사가 꾸준히 이뤄지면 별 문제의식 없이 차명으로 거래해오던 것에 익숙한 재벌가의 고질적 병폐가 근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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