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N 드라마 '보이스'서 심대식 역 맡아 열연

지난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드라마 '보이스'의 백성현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출처=포커스뉴스>

배우 백성현은 긴 시간 동안 누군가의 어린시절을 연기했다. 1994년 불과 5살 나이에 영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로 데뷔해 이병헌, 최수종, 이서진, 권상우, 차인표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아역으로 대중에 얼굴을 비췄다. 

올해로 배우 생활 24년 차. 백성현은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을 지나오며 묵묵히 한 길만 걸었다. 그 사이 '연기 잘하는 배우'로, 혹은 '미소가 예쁜 배우'로 사랑받은 그다. 커다란 '한 방'은 없었지만 꾸준히 부름받았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출연한 작품만 50여 편에 이른다. 

그러나 정작 본인 "배우로서의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닐까 계속 고민했다"고 한다. 자신보다 늦게 데뷔한 연기자들이 톱스타의 반열에 오르는 걸 지켜보는 것도 속이 쓰인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는 '인생 작품'이 없다는 게 그를 괴롭게 했다. 

그런 백성현이 최근 대중에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얼마 전 종용한 OCN 드라마 '보이스'에서 심대식 캐릭터를 맡아 열연하면서다. 시놉시스에 단 '한 줄'로 설명돼 있던 심대식을 기꺼이 맡겠다 자처했고, 그 결과 심대식은 작품에 가장 큰 반전을 선사한 인물로 화제의 중심에 선 것은 물론이고 "서른의 문턱에서 배우 인생의 2막을 열었다"는 호평을 끌어냈다. 

"8회부터는 거의 생방송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이러다 죽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니까요. 어떻게 작품을 끝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지냈는데, 너무 큰 사랑을 받았더라고요. 사실 (심)대식이는 이미 죽었어야 하는 캐릭터였는데 보시는 분들의 성원 덕분에 죽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OCN 드라마 '보이스'의 스틸 이미지 속 백성현의 모습. 극 중 112신고센터 골든타임팀 소속 심대식 형사로 분해 열연했다. <제공=OCN>

사실 백성현에게 있어 심대식 캐릭터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작품 촬영이 임박한 순간에 뒤늦게 투입돼 캐릭터를 분석할 시간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극 후반부 반전의 키를 쥔 인물이라는 설정이 부담감으로 작용했다. "김홍선 감독님과 마진원 작가님, 그리고 장혁이라는 배우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고사했을 것"이라는 그다. 

"심대식 캐릭터를 맡기로 한 이상, 제대로 뒤통수를 쳐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동시에 심대식이 왜 친형 같은 사람을 결국엔 배신하게 되는 지를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싶었고요. 감독님과 작가님께서 심대식이라는 사람을 제대로 그려내 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불안해 하지 않고 제 몫만 해내자고 생각했어요."

백성현은 함께 호흡 맞춘 장혁에 대해서도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사실 백성현의 '보이스' 출연은 장혁의 존재감이 한 몫했다. 크지 않은 배역임에도 망설임없이 도전장을 던질 수 있었던 건 "장혁과 함께 연기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장혁 형과 함께 제대로 된 '버디' 드라마를 찍어보고 싶었다"는 그다.  

백성현과 장혁은 종횡무진했다. 극 중 골든타임팀의 심대식 형사와 무진혁 팀장으로 분해 콤비로 활약했고, 대중은 '브로맨스의 정석'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백성현은 무진혁 팀장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심대식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15회의 반전을 극대화했다. 

"어떤 분은 장혁이라는 배우의 스타일이 너무 강하다고 이야기 해요. 하지만 전 '이래서 장혁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최상의 연기를 만들기 위해 정말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15회에서 심대식이 무진혁 팀장에게 정체를 들키는 장면을 찍는데 장혁 형이 '네가 가진 걸 다 보여줘야지'라고 하시더라고요. 작품 시작부터 고대했던 장면이었는데 정말 어떻게 연기했는지 떠오르지가 않을 정도로 몰입해서 촬영했어요. 장혁 형 덕분에 모든 걸 쏟아부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OCN 드라마 '보이스'의 스틸 이미지 속 백성현의 모습. 정체가 발각된 뒤 모태구(김재욱 분)에 납치당해 살해될 위기를 맞았다. <제공=OCN>

백성현은 '보이스' 심대식을 연기하며 셰익스피어의 희곡 '오셀로'의 악인 이아고를 떠올렸다. 또 영화 '다크나이트'의 배트맨과 조커를 생각했다. 심대식은 이아고처럼 모두를 완벽하게 속이는 사기꾼이 돼야 했고, 때론 배트맨과 조커의 대결을 지켜보는 평범한 인간처럼 사시나무 떨듯 떨어야 했다. 

"이아고는 악마같은 인물이죠. 세치 혀만 믿고 까부는 못난 캐릭터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결국은 주변의 신망을 얻는단 말예요. 이아고에게서 무진혁을 속여야 하는 심대식을 발견했어요. 한편으로는 공포와 마주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무진혁과 모태구(김재욱 분)이라는 무지막지한 사람들이 대결을 펼치는 데 심대식이 뭘 할 수 있었을까요. 슈퍼히어로와 슈퍼빌런이 싸우는데. 죽음을 앞둔 인간의 처절함을 '살려주세요'라는 대사에 담았죠."

애초 심대식은 극 중 죽음을 맞는 것으로 설정돼 있었다. 마진원 작가는 백성현에게 수시로 "대식이 어떻게 죽여줄까. 화형, 수장, 능지처참 가운데 골라봐"라며 놀려대곤 했다. 하지만 심대식은 끝끝내 죽지 않았다. '보이스' 최종회에서 꿈틀대는 심대식의 손은 시즌2에 대한 기대를 한 껏 끌어올렸다. 

"끈질기게 살아남은 보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건 전적으로 시청자들 덕분이에요. 솔직히 20년 넘게 배우생활을 하면서 대표작이라고 할 만 한게 없었거든요. 그런데 '보이스'는 달라요. 정말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내 인생작품, 내 인생 캐릭터라고요. 시즌2가 제작된다면, 대식이가 또 어떤 모습을 보일지 기대해주셔도 좋아요. 자신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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