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느닷없이 개헌론을 제기하며 특유의 승부수를 던졌다. 임기 내내 '개헌은 블랙홀'이라며 반대하더니 '더는 미룰 수 없다'며 자신이 개헌의 주도권을 쥐고 필요하면 정부가 개헌안까지 제안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정국을 블랙홀에 빠뜨리고 있다. 내년 대선정국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이뤄진 박 대통령의 개헌론에 대한 갑작스런 입장선회를 두고 그 배경과 속내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야권 일각에서는 이번 개헌논의가 정권게이트로 비화하고 있는 우병우 민정수석, 최순실씨와 미르·K스포츠재단의 비리 의혹을 덮고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꼼수일 뿐이라는 곱지 않은 시각이 있는 게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개헌은 하루아침에 제안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에 상당한 기간 동안 은밀하게 준비해왔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 개헌을 제안한다고 검찰수사가 달라질 수도 없다며 야당의 주장은 기우와 억측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임기를 약 1년 4개월, 차기 대통령선거를 약 1년 2개월 남긴 시점에서 '깜짝 카드'로 던져진 박 대통령의 개헌제안은 앞으로의 대선구도마저 뒤흔들 메가톤급 이슈임에 틀림없다. 이제 막 출발점에 서있는 대선레이스를 더욱 복잡다단하게 끌어갈 변수로 떠올랐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그동안 여야를 막론하고 개헌을 요구해온 목소리가 다수였고 국민여론 역시 개헌찬성이 높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제안을 거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처럼 박 대통령의 개헌제안은 대선정국을 앞둔 여야의 셈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30년 만에 대선정국과 개헌정국이 겹치는 정치적 전환기가 만약 도래한다면 여야잠룡들의 지금까지의 대선 전략은 크게 의미가 없어진다. 워낙 폭발력이 높고 집권을 위한 다양한 조합이 존재하기에 여야 모두 전략을 급선회해야 하고, 대권 잠룡들의 지금까지 위상에도 변화가 올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야권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주도하는 개헌정국이 왠지 모르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개헌은 단순히 권력구조 개편을 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걸친 가치체계와 질서의 '대변화'를 수반한다. 그렇기에 권력구조에만 국한된 단순한 '리모델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국민들의 여론이다. 개헌논의가 있을 때마다 제기되었던 선거구제 개편을 포함한 국회의 내각불신임, 국회의원 특권축소, 국가재정 건전화, 진일보한 경제민주화 규정 등을 포함한 '재건축'이 돼야 한다는 요구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 헌정사에서 개헌은 대부분 역사적 ‘대형사건’에 의해 매우 급하게 이뤄지거나, 임기연장 같은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진행되어 왔다는 흑(黑)역사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대선정국을 앞두고 개헌론이 나온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계개편을 비롯해 다양한 정치적 동기에 의해 추동됐지만 대부분 결정적 동력을 얻지 못한 채 소멸했다. 가장 가깝게는 지난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해 정국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나 실질적 탄력을 받지 못한 경험도 있다.

어쨌든 30년 묵은 '87년 헌법체제'의 명운이 다했다는 큰 틀의 국민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더불어 의도가 있든, 없든 개헌론이 제기되는 순간 '좌 순실, 우 병우'라는 조어까지 나올 정도로 박 대통령과 관련됐다는 의혹을 받는 모든 악재가 '개헌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개헌론과는 별개로 이들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국민들의 바램이다. 결국 개헌론이 박 대통령 자신을 둘러싼 측근들의 비리를 덮기 위한 '깜짝쇼'로 변질된다면 그 진정성이 퇴색할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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