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일수록 술 소비가 늘어난다는 속설이 있다. 최근 나온 정부당국의 통계를 보면 이 속설이 어느 정도 들어맞는 듯하다. 이 자료에 따르면 경기부진이 지속됐던 지난해 주류에 붙는 세금이 3조2275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주세 징수규모가 3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조원대에서 2조원을 돌파한 때도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이었다니 불황이 술 소비를 부른다는 속설이 틀린 말은 아닌 셈이 됐다.

한국인의 주류섭취량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편에 속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표한 올 상반기 주류소비, 섭취실태를 보면 1회 평균음주량은 맥주의 경우 200㎖ 기준 4.9잔이고 소주는 6.1잔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근 가벼운 음주도 암이나 당뇨 등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해외의 연구결과에 따른 ‘음주 가이드라인’이 나오면서 전 세계적으로 술 소비가 줄어드는 가운데 나온 이례적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다 보니 한국을 '술 공화국' '술 권하는 사회'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최근에는 몸에 해롭다는 독한 폭탄주 소비가 줄고 상대적으로 순한 저(低)도주 소비가 늘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 판이다. 이렇듯 우리 사회의 술 소비량이 다른 나라와 달리 증가하는 바탕에는 양극화의 심화라는 불편한 진실이 도사리고 있다. 삶이 팍팍해진 서민들이 불평등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방편의 하나로 술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담뱃세에 이어 주세 인상까지 논의하고 있다고 알려지면서 가뜩이나 오랜 불황에 고통을 겪고 있는 서민들을 더욱 우울하게 하고 있다. 담뱃세가 13조원에 이르고 법인세의 30%까지 육박하는 상황에서 또 다시 서민부담만을 증대시키는 정책을 펼 수 있느냐는 볼멘소리들이 나온다. 전문가들도 양극화 극복을 위해서라도 대기업, 고소득자를 중심으로 한 부자증세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담뱃세에 이어 주세를 인상하려는 이유로 국민건강 증진을 들고 있지만, 국민들은 서민증세를 통해 세수를 늘리려는 또 다른 꼼수라고 보고 있다. 조세정책에 대한 국민과 정부의 시각이 확연히 엇갈리고 있는 대목이다. 금연효과가 확 줄어든 담뱃세 인상의 사례에서 보듯 정부는 서민에게 고통을 주는 증세를 강행하고도 국민건강이라는 정책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정부가 이에 대한 공식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주세인상은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조세정책은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우리민생과 경제현실을 전혀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이런 격차를 해소하고 소득증대를 이끌 수 있는 정책의지마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정부는 기업의 법인세를 적게 걷어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고 이를 통해 고용을 확대하는 이른바 '낙수효과'를 노리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성장의 열매가 골고루 아랫목으로까지 내려가지 않고 전혀 효과가 없었다고 증명이 된 사안이다.

담뱃세 인상으로 담배 값이 2배 가까이 오르자 상대적으로 소득이 취약한 저소득층에서만 소비를 줄였다고 한다. 앞으로 주세마저 인상이 된다면 동료나 이웃에게 술 한 잔 권하는 것도 부담이 되는 각박한 현실에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역설적으로 갈수록 불평등이 심화되는 양극화 사회에 절망하면서 술을 더 찾게 될지도 모른다. 조세정책이 서민층 '등골 브레이커'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언제쯤 경기가 확 되살아나 서민들이 시름에 찬 술잔을 기울이지 않는 날이 올 것인가를 기다릴 뿐이다.

저작권자 © 굿모닝경제 - 경제인의 나라, 경제인의 아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