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이 있다. 국가주도의 경제에서 우리경제를 흔들 수 있는 정도의 규모를 가진 기업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속언이다. 좀비기업들조차 국민혈세로 연명할 수 있었던 특이한 시스템을 만든 말이기도 하다. 국내 1위의 해운사인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다. 그동안 채권단은 고민을 거듭하면서 추가지원불가 결정을 내렸다.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은 한진해운에 대한 신규지원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표현을 쓰면서 불가입장을 전하며 법정관리 신청에 들어갔고 법원은 청산절차 수순으로 들어갈 공산이 커졌다.

한진해운은 고(故) 조수호 회장의 부인인 최은영 회장이 경영을 하다 시아주버니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넘긴 회사로 실질적인 오너가 있는 회사다. 채권단이 한진 측에 자구안을 요구하며 사재출연까지 압박을 가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하지만 한진해운이 최종적으로 낸 자구안에는 총 5000억원 밖에는 만들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부와 채권단은 한진해운 회생을 위해서는 1조원이 훌쩍 넘어가는 금액이 필요하다면서 한진그룹이 회사를 살릴 의지가 없다고 비난했다.

결국 채권단이 추가지원을 할 수 없다고 손을 들었고 회사는 법정관리 신청에 들어갔다. 문제는 법정관리 신청에서 회생보다는 청산으로 가닥이 잡힐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해운업계 특성상 법정관리가 될 경우 화물운송계약 해지, 용선선박 회수, 해운동맹 퇴출 등으로 정상적 영업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정부와 채권단이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추가지원을 못한 까닭은 오너 측 자구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조양호 회장이 계열사를 통한 4000억원 지원과 사재출연 1000억원을 약속했지만 회사정상화를 위한 진실성이 결여됐다는 판단이다.

업계에서는 한진해운을 살려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지만, 일각에서는 조 회장이 법정관리를 염두에 두고 훗날을 도모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한진그룹이 제시한 자구안 내용에는 내년 7월까지 5000억원의 신규자금을 지원하고, 보유 지분(33.2%)의 차등감자는 수용하되, 영구채 2200억원은 출자전환 후 감자수용을 불가하고, 기타 추가적 자금조달 방안(롱비치터미널(TTI) 주주대출 채권매각 등)은 그룹차원 지원방안이 아닌 한진해운 자산 등을 활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정부와 채권단이 진실성을 의심하게 한 구체적인 내용이다. 게다가 한진그룹이 한진해운의 알짜배기 사업을 미리 인수한 것도 심증을 굳히게 했다. 한진은 지난해 말 한진해운이 보유하고 있던 한진해운신항만 지분 50% 전량을 1355억원에 인수했고 최근 동남아항로 일부 운영권도 621억원에 넘겨받기로 했다. 최근 한진해운이 보유하고 있던 베트남 터미널법인 지분 21.33%도 230억원가량에 취득했다. 한진은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6월 말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지분 16.67% 전량을 신세계그룹의 센트럴시티에 1658억5000억원에 매각하기도 했다.

한진이 매입한 한진해운 자산들은 대부분 알짜로 평가받는다. 한진해운신항만은 2007년 9월 설립됐는데 2009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흑자를 내고 있다. 한진은 한진그룹에서 육상운송에 주력하고 있다. 해운업도 하고 있지만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한 자릿수에 그친다. 한진은 한진해운의 아시아노선 영업권을 인수하면서 '컨테이너 정기선 사업 진출을 통한 해운사업 강화'라고 인수목적을 설명하기도 했다.

한진해운이 이사회에서 법정관리 신청을 만장일치로 의결한 이후 한진그룹은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가더라도 해운산업의 재활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돌이켜보면 국민의 혈세로 한진해운을 살려주지 않으면 한진이 알짜사업 인수를 통해 다시 해운업에 진출하겠다는 결기로 보인다. 이번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은 만만치 않은 후폭풍이 예상되지만 오너들의 ‘모럴해저드’를 막기 위해서는 올바른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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