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부 연구개발(R&D) 투자액은 19조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R&D기술의 성과는 부끄러울 정도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에서 R&D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기준 4.29%로 세계 1위다. 금액으로 따져도 미국, 일본, 중국, 독일, 프랑스에 이어 세계 6위 수준으로 지난 10년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양적 증가에 비해 질적 발전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아니 오히려 퇴행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 R&D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2009년 11위에서 지난해 19위로 투자액 증가에도 불구하고 하락했다.

정부의 R&D투자 성과가 미미한 이유는 따로 있다. 정부가 연구자들에게 100% 성공률을 강요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강요는 아니지만 정부의 R&D투자를 받은 연구자의 경우 분위기가 그렇게 전개되면 눈치를 보기 마련이다. 결국 실패가 두려워 미래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도전적인 연구는 뒤로 미루고 당장 성과를 내기 위해 외국이 한참 전에 개발한 기술을 가져다가 포장만 바꾸기도 한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연간 7000억원이 투입되는 정부 원천기술 개발과제의 지난해 성공률은 96%에 이른다. '우수'에 해당하는 A등급이 52.4%로 가장 많았고, 실패를 뜻하는 D등급을 받은 것은 124개 과제 중 단 한 건뿐이었다. 기초연구도 평가대상 650개 과제 중 3.7%만 C~D 등급을 받았다. 매년 4조5000억원의 예산을 쓰는 연구재단이 지원하는 사업 모두가 100%에 육박하는 성공률을 기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탄생한 결과물은 거의 무용지물이라고 한다. 이 성과물을 산업계에서 돈을 주고 사가거나 사업화에 성공한 사례는 찾기가 힘들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따르면 정부 연구소들이 보유한 특허 중 71.6%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으로 그 비율은 2013년 66.4%에서 2014년 68.6%, 지난해 71.6%로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막대한 세금을 투자하고도 기술을 축적하지 못하는 것은 R&D 성공 조작까지 일삼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이는 과학계가 실패애서 배울 기회마저 앗아가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정부 R&D 사업화 성공률은 영국이 71%, 미국이 69%를 기록한다. 이에 반해 한국은 20%로 격차가 너무 크다. 정부출원 특허도 2010년 이후 3만 건 중 기술이 외면당해 포기한 특허가 1만5400건이 이른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정책이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한다. 정부, 장관, 관료 때문에 장기적 과학기술 정책이 자리를 못 잡는다고도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창조경제' 같은 새로운 브랜드를 내놓고 연구자들에게 연구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정부 브랜드에 맞춰 포장을 하기 위함이다. 이들에게 연구의 내실 따위는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 과거의 성공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유행을 쫒는 정부주도 R&D를 반복하고 있다. 올해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가 화제가 되자 정부는 이를 따라잡겠다며 막대한 예산을 책정하고, 대기업을 동원했다. 이어 '포켓몬 고' 열풍이 불자 AI에서 AR(증강현실)기술에 대해 눈길을 주고 있다.

과학기술은 경제성장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 하지만 당장 성장의 열매를 가져오는 직접적인 요인은 아니다. 과학기술은 미래에 활용할 연구 성과를 만든다. 이 재료를 어떻게 쓰느냐는 기업과 사회의 몫이다. 정부가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결정까지 하면 곤란하다.

최근엔 우리 연구계도 미국처럼 대학의 역할을 강조한다. 대부분의 미국 정부연구소는 주요 기관의 운영을 대학에 맡긴다. 문제는 한국에서는 대학조차 정부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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