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고들 한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인사(人事)는 망사(亡社)'가 돼버렸다. 낙하산인사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준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이자 전 아시아개발은행(AIIB) 부총재의 얘기다. 그는 2013년 4월 산업은행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낙하산 논란에 휩싸이자 "나는 낙하산이 맞다. 결과로 보여주겠다"고 장담했다.

그는 화려하게 데뷔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대학교수였다. 한국은행에 잠깐 근무한 이력은 있지만 경제 관료로서 트레이닝 받은 경력이 없었다. 단지 박근혜 대통령과 서강대 동문에 경제공부모임 회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후에 그는 대통령인수위에 이름을 올리더니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회장으로 신데렐라처럼 등장했다.

홍 전 부총재는 올해 2월 AIIB 부총재로 다시 한 번 날아올랐다. 5조원 대 회계비리에 휩싸인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의 기관장으로서 부실적발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또 다시 정권의 줄을 타고 국제기구의 부총재로 변신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낙하산의 말로를 직접 결과로 보여줬다. 그는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에 발목을 잡히며 AIIB 부총재직을 휴직하더니 이젠 그 자리마저 잃었다. AIIB는 홍 전 부총재가 맡았던 투자위험관리(CRO) 부총재직을 국장급으로 강등시켰다. 이 자리는 정부가 국민의 혈세 37억달러(약 4조3000억원)의 분담금을 납부하며 지켰던 자리였다.

그의 몰락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가 도화선이 됐다. 그는 인터뷰에서 대우조선에 대한 부실지원 책임자로 청와대 서별관회의에 참석한 최경환 부총리,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 3인을 지목했다. 당시 산업은행장이었던 자신은 들러리였고, 부실기업에 4조200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은 '윗선'이라고 폭로했다. 이후 서별관회의에 대한 청문회개최 요구가 높아지자 돌연 AIIB에 장기 휴직계를 내고 사실상 잠적해 버렸다.

홍 전 부총재의 낙하산인사 논란이 일자 정부는 AIIB 부총재 선임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뺌했다. 홍기택 개인이 공모에 참가해 이뤄진 것이라는 변명이다. 또 부총재 자리가 날아간 것은 중국 주도의 국제기구가 그리 한 것은 우리 정부 책임이 아니라는 태도다. 군색한 변명이다. 홍 전 부총재가 AIIB 이사회에서 부총재로 공식 승인되자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과 범정부 차원의 노력이 맺은 결실"이라고 자화자찬했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박근혜 정부는 취임 초기부터 인사 때마다 헛발질을 많이 했다. 관가에서는 청와대의 인재풀이 빈약하다는 한탄과 함께 검증절차에 구멍이 뚫렸다는 자조의 목소리도 나온다. 주요 인사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섞여있다.

홍기택 사태는 박근혜 정부 초기에 국제적 조롱거리를 만들었던 '윤창중 사건'과 함께 '양대 망신'의 인사라 할 수 있다. 윤창중과 홍기택의 사건의 공통점은 역량이 못 미치는 인사를 그 자리에 앉혀놓은 인사권의 문제다. 함량미달의 인사조차도 걸러내지 못하는 인사검증 체계는 하루빨리 손봐야 한다.

홍 전 부총재가 AIIB 부총재로 영전할 때 경제 관료들 사이에서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국제기구의 부총재나 국장급 자리는 산업은행 회장처럼 거드름 피우며 도장이나 찍던 사람이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다섯 명의 AIIB의 부총재 중 '비전문가'로 분류될 만큼 일천한 경험을 가진 것은 홍 부총재뿐이었다. 다른 부총재들은 국제기구와 자기 업무에서 수년간 전문성을 인정받은 사람들이었다.

이번 홍기택 사태는 개인의 돌출발언과 기행으로 치부될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행해졌던 낙하산인사의 문제점을 통렬히 반성하고 검증된 역량 있는 인사들로 교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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