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정부가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를 알고도 쉬쉬했다는 한 일간지의 보도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안종범 청와대경제수석과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이 참석한 청와대 '서별관회의'(비공개 거시경제정책협의체)에서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분식회계문제에 대해 집중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당시 금융위원회가 "대우조선에 5조원 이상의 부실이 현재화되어 사실관계규명을 위한 감리가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가 있다"고 밝혔지만, 이날 서별관회의에 모인 청와대와 정부인사는 대우조선의 수조원대 분식혐의에 대한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청와대 서별관회의 일주일 뒤 대우조선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은 4조2000억원 규모의 자금지원을 골자로 한 '대우조선 정상화방안'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대규모 분식회계에는 눈을 감고 국민의 혈세로 만들어진 나랏돈을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부실기업에 투입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그 원인은 정책금융기관의 '낙하산' 인사에서 찾을 수 있다. 정부가 국책은행장 등 주요 인사들에 대해 강력한 인사권을 전리품 정도로 생각하고 전문성 보다는 정권에 협조적인 인물 위주로 인사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행은 이번 정부뿐만 아니라 관행적으로 행해지는 문제다. 결국 정책은행은 정부의 쌈짓돈을 관리하는 역할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난해 10월 22일 서별관회의에 제출된 금융위원회 문건에는 "금융감독원이 그간 자발적 소명 기회를 부여했으나 회사(대우조선)는 소명자료 제출에 소극적"이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대우조선이 금융당국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금융당국 보다 높으신 양반이 대우조선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는 의혹을 지우지 못하는 대목이다.

이 문건에는 대우조선이 금감원에 자료제출을 꺼리는 이유에 대해서도 언급돼 있다. 금감원이 회계감리에 착수하면 회사의 신용도가 떨어지고, 수주차질은 물론 이미 수주한 물량도 취소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근거로 분석이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거의 엄포용이다.

대우조선은 "대우조선의 주식이나 채권에 돈을 넣은 투자자들의 법적 소송마저 예상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산업은행은 투자자소송 규모가 최소 5800억원, 최대 1조14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는 내용도 보고한 것으로 돼 있다. 이쯤 되면 청와대와 정부를 상대로 '죽이려면 죽여라'식의 공갈협박 수준이다.

실제 금감원의 감리는 자료제출 기피로 결정되지 못하다가 실사결과가 나온 뒤인 12월 10일에야 결정됐다. 이어 감사원이 산은에 대한 감사를 펼치다 1조5000억원의 분식회계 의혹을 금감원에 통보하자 정밀 감리에 들어갔다.아직까지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규모는 명확하지 않다. 감사원은 1조5000억원에 이른다고 하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5조원이 넘는다는 풍문이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그간 숨겨왔던 부실부터 드러낸 이후 그에 맞춰 퇴출여부나 지원수준을 정하는 게 순서다. 하지만 정부는 분식규명은 뒤로 한 채 엉터리 장부를 기준으로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이미 대우조선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는데 정부가 억지로 연명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정부는 대우조선의 부실이 우리경제에 미칠 파급효과가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려움 보다는 있는 사실을 그대로 국민에게 알리고 설득하는 작업이 더 필요했다. 이번 문제는 청와대와 정부관계자 모두 그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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