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일선 물러난 지 7년 만…국내 민간기업 첫 기술연구소 설립
효성 성장 기틀 마련…스판덱스, 타이어코드 등 미래 소재 밑거름
전경련 회장·한일경제협회장 등 역임…경제외교 확대에 힘써
빈소 신촌세브란스장례식장 마련…5일장으로 추도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
[효성 제공.

'재계의 큰 별' 중 하나인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9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2017년 고령과 건강상의 이유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7년 만이다.

재계에 따르면 조 명예회장은 이날 서울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1935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조 명예회장은 고(故)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에서 응용화학을 전공하고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원에서 화공학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

당초 대학교수를 꿈꿨으나 1966년 박사 과정을 준비하던 중 부친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귀국, 효성물산에 입사하며 기업인의 삶을 살았다.

이후 동양나일론 울산공장 건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데, 이를 계기로 효성그룹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73년 동양폴리에스터를 설립하면서 화섬 사업을 중심으로 성장 기반을 다졌다. 1975년 한영공업(현 효성중공업)을 인수해 중화학공업에도 진출했다.

1982년 효성중공업 회장직을 물려받으면서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섰다.

창업주인 조홍제 회장은 장남인 조석래 명예회장에게 효성을 물려줬고, 차남 조양래 한국타이어 명예회장과 삼남 조욱래 DSDL(옛 동성개발) 회장에게는 각각 한국타이어와 대전피혁을 책임지게 했다.

2009년 7월 제주하계포럼에 초청된 부시 전 대통령과 인사하는 조 명예회장 모습. [사진=효성]
2009년 7월 제주하계포럼에 초청된 부시 전 대통령과 인사하는 조 명예회장 모습. [사진=효성]

조 명예회장은 회장 취임 이후 경영 혁신과 주력 사업 부문의 글로벌화를 이끌며 효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조 명예회장은 생전에 "글로벌 기업으로서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격이 아닌 품질로 승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 기술 경영 시대가 열린 시초 중 하나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조 명예회장은 기술을 중시해 1971년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이후 2006년에는 이를 효성기술원으로 개편했다. 이는 효성의 대표 제품인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 등 미래 성장을 이끌 핵심 소재가 만들어지는 밑거름이 됐다.

효성은 1997년 자력으로 스판덱스 상업화에 성공했고, 2011년에는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고성능 탄소섬유를 세계 3번째,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이 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을 적극 개척하며 효성은 전 세계 50여개 제조·판매 법인과 30여개 무역법인·사무소를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1998년에는 모기업인 효성물산의 부도설이 금융권 등에 번지면서 계열사들이 연쇄 부도 위기에 몰리자 효성물산, 효성생활산업, 효성중공업, 효성T&C를 ㈜효성으로 전격 통합하는 등 과감한 구조조정을 추진해 시장의 우려를 단숨에 잠재웠다.

2007년 3월 전경련 회장에 취임한 조 명예회장 모습. [사진=효성] 
2007년 3월 전경련 회장에 취임한 조 명예회장 모습. [사진=효성] 

조 명예회장은 재계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도맡았다.

2007∼2011년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을 맡아 재계를 대변해 규제 개혁 등을 정부에 건의했다. 기업의 일자리 창출과 투자 활성화에도 앞장섰다.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은 앞서 조 명예회장의 팔순을 기념한 기고문집 '내가 만난 그 사람, 조석래'에서 1990년대 초 국회 재무위원회가 전경련을 방문했을 때 쓴소리했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대의를 위해서는 손해를 보더라도 할 말은 하는 것이 조 전 회장을 당당한 재계 지도자로 만들었다"는 손 명예회장이 기억하는 조 명예회장이다.

조 명예회장은 한미재계회의 한국 측 위원장(2000∼2009년), 한일경제협회장(2005∼2014년) 등도 역임했다.

2000년부터 한미재계회의를 통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공식 제기했고, 체결 이후에도 미국 의회를 방문해 인준을 설득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

지난해 8월에는 일본과의 우호 협력과 관계 개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8회 한일포럼상'을 수상했다. 조 명예회장은 한일포럼과 함께 2002년 한일 공동 월드컵 개최를 처음 제안했고 한일 양국 간 비자 면제, 역사연구공동위원회 설치 등을 성사시켰다.

2009년에는 일본 정부가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욱일대수장'을 받은 바 있다. 금탑산업훈장(1987년)과 서울국제포럼 선정 영산외교인상(2022년) 등도 받았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으로는 부인 송광자 여사, 장남인 조현준 회장과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 삼남 조현상 부회장 등이 있다.

굿모닝경제 이세영 기자

저작권자 © 굿모닝경제 - 경제인의 나라, 경제인의 아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