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국무총리가 27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국무회의를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출처=국무총리실>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상시 청문회' 개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에 야당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면서 '협치'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정부는 이날 서울청사에서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거부권)을 의결했다. 해외 순방 중인 박 대통령이 전자서명 방식으로 이를 재가하면 거부권 행사 절차가 마무리되고 국회법 개정안은 국회로 돌려보내진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현안 조사를 위한 청문회 제도는 입법부가 행정부 등에 대한 새로운 통제수단을 신설하는 것으로 '권력 분립 및 견제와 균형'이란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임기 중에 국회에서 통과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지난해 6월25일 국회의 행정입법 통제 권한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이후 2번째다.

♦ '서두른' 거부권 행사 비난 일 듯…국회법 개정안, 사실상 폐기

거부권(veto power)은 국회가 의결해 보낸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대통령이 해당 법률안을 국회로 돌려보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는 헌법상 권리다.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하면 국회는 반드시 이를 본회의에 상정해야 하고,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의결하면 그 법안은 법률로서 확정된다.

하지만 현재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19대 국회 임기 종료전에 본회의를 열어 재의 절차를 밟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19대 국회는 오는 29일로 임기가 종료되기 때문에 재의요구안에 대한 표결을 하기 위해서는 28∼29일 이틀간 본회의를 열어야 하지만 시간이 촉박한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다수 의원이 총선에서 탈락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 중 서둘러 거부권 행사가 나온 것에 대해 비난이 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주 정기 국무회의가 예정돼 있음에도 임시 국무회의를 개최해 거부권을 의결한 것은 일정상 19대 국회 본회의 소집이 불가능한 것을 알고 자동폐기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헌법 제51조(회기불연속의 원칙)에 따르면 '국회에 제출된 법률안 기타의 의안은 회기 중에 의결되지 못한 이유로 폐기되지 않는다. 다만, 국회의원의 임기가 만료된 때에는 그렇지 않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거부권 행사로 다시 국회로 넘어온 법률안은 국회의원 임기와 함께 폐기된다는 의미다.

즉 19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종료되는 오는 29일까지 본회의를 열어 거부권이 행사된 개정안에 대해 의결 절차를 거치지 못할 경우 폐기돼 제20대 국회에 처리하기 위해서는 재발의부터 새롭게 절차를 거쳐야 한다.

♦ 야당 반발 거세…"20대 국회서 재추진"

현재로서는 국회법 재의를 위한 본회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야당은 제20대 국회에서 본회의 소집을 요구해 재의요구안에 대한 의결을 추진할 계획이어서 여야간 공방이 예상된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박근혜 대통령이 아프리카 방문 사이에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서 19대 국회에서 의결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의회민주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라며 "20대 국회에서 재의결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 역시 "대신 '도장'만 찍는 '대도 총리'가 만들어진 거 같아 착잡하다"며 "더민주·국민의당·정의당 등 야(野) 3당 원내대표는 이미 20대 국회에서 재의결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3당은 정부의 거부권 행사 방침에 크게 반발하며 20대 국회에서 국회법 개정안의 재의결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 경우에도 쉽지는 않아 보인다.

국회법 개정안을 의결한 19대 국회가 종료된 상황에서 이를 구성원이 다른 20대 국회에서 재의결할 수 있느냐는 논란이 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회선진화법상 새누리당의 반대도 넘어야 한다. 국회 선진화법을 넘기 위해서는 180석이 필요하지만 야3당은 더불어민주당 123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을 합해 총 167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청와대가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재적 의원의 3분의 2인 200석이 필요해 33명이 추가로 필요하다. 물론 여당 내 비박계 일부가 이에 동참할 수 있지만 처리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민경욱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재의 요구는 당연하고 고유한 권한 행사"라며 "야당의 반발이 있겠지만 재의 요구는 협치와 성격이 다른 일로, 이번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성과 행정부 업무 마비 등 부작용 논란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저작권자 © 굿모닝경제 - 경제인의 나라, 경제인의 아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