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경제=서경서 기자] 기업이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과정에서 사건 사고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내부적인 헤프닝으로 마무리되는 '추억' 수준의 사건도 있는 한편, 실수나 잘못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통상 이럴 경우 가장 필요한 것은 '사과'다.

사과(謝過)의 사전적 의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이다. 보다 간결하게 표현하자면 '미안함'에 대한 표현이랄 수 있겠다. 

20세기 유명 심리학자인 돌프 질만은 '사과는 안하는 것보다 빨리 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특히 2010년대 들어 트위터 등 SNS 여론이 활성화된 이후 기업의 사과에는 '신속성'이 필수 요소가 됐다. 

2012년 유명 외식 프랜차이즈에서 임신부가 직원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 트위터를 통해 일파만파로 번진 사건이 있었다. 해당 내용을 접한 업체의 CEO는 진상이 밝혀지기 전임에도 직접 피해자를 찾아가 직접 사과했고, 자신의 휴대전화번호까지 공개하며 사과문을 올렸다. 얼마 후 경찰 조사 결과 CCTV에 폭행 모습은 찍혀 있지 않았고, 결국 쌍방과실로 마무리돼 누명을 벗었다.

2013년에는 한 대형마트의 테넌트(임대매장) 직원이 전직 대통령을 희화한 이미지를 외부 모니터에 게재해 논란이 인 적이 있다. 마트 건물 內 임대 공간이라 직접 관리하는 영역이 아니었음에도 해당 마트는 사건 발생 1시간 만에 사과문을 올렸고, 성난 인터넷 민심 역시 진정성 있는 사과 앞에 금새 잠잠해졌다.

하지만 높아지는 스마트폰 보급률과 통신기술의 지속적 발달로 여론이 '온라인' 중심으로 쏠리며 이런 '사과의 미학'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진정성을 담은 빠른 사과라 할지라도 블랙컨슈머와 키보드 워리어 등을 통해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로 이어지는 경우도 생겨났다. 이른바 '온라인 조리돌림'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한 스타트업의 사과문 중 하나. 해당 기업은 루머가 발생하자마자 연이어 사과문을 올렸었지만, 오히려 일부 블랙컨슈머들에 의해 가짜뉴스와 악성루머들이 더 퍼지게 되는 단초로 작용했다. 
한 스타트업의 사과문 중 하나. 해당 기업은 루머가 발생하자마자 연이어 사과문을 올렸었지만, 오히려 일부 블랙컨슈머들에 의해 가짜뉴스와 악성루머들이 더 퍼지게 되는 단초로 작용했다. 

지난 2016년 말, 당시 SNS 상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D2C 기반의 반려견 사료 스타트업이 폐업한 사건이 있었다. 

기호성 테스트 영상(반려견들이 해당 사료만 찾는 모습) 등으로 출시 2달 만에 업계 1위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하던 기업은 온라인 상에서의 악성 루머와 마주치게 된다. 해당 업체의 사료를 먹고 반려견들이 혈변과 구토 등의 증상을 보인다는 게시물이 올라왔고, 이내용은 SNS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반려견 시장이 활성화되며 관련 커뮤니티와 전문 언론매체까지 있던 터라 해당 내용은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해당기업의 대표 역시 스타트업 기업답게 조금은 투박했지만, 진정성을 담은 사과문을 올렸다. 당시 사과문을 보면, '관련 내용에 대해 국가기관 등에 검사를 의뢰했고 결과가 나오는 대로 진상을 밝히겠다'는 내용이 있다. 사실, 해당 사건에 있어 정확한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엄밀히 말하면 '잘못한 부분이 없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 특유의 열정으로, 진심어린 사과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신속한 사과가 독으로 작용했다. 블랙컨슈머들이 달려들었고, 존재하지도 않았던 반려견들이 사망하거나 아프다고들 했다. 사과문에 기재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단서 없는 보상금 요구가 줄을 이었고, 보상 전 증빙을 요구한 스타트업 고객센터는 졸지에 '악마'가 됐다. 

3주가 지나 일부 고객들이 반납한 사료와 판매되는 사료, OEM 제조공장의 사료까지 전수조사한 결과, 유해성분은 나오지 않았다. 검사결과를 홈페이지에 공시했지만, 이미 수많은 인터넷 커뮤니티들에 퍼진 악성 루머와 가짜뉴스들은 견딜 수 없는 무게로 다가왔다. 

결국 반려견에 대한 애정을 담은 스타트업 브랜드 '디어마이펫'은 폐업할 수밖에 없었다. 여론몰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사과문은 분명 진정성이 담긴 빠른 조치였다. 하지만 일그러진 온라인 여론은 보수적인 사료업계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진 패기어린 청년들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주었다. 

근거없는 악성 게시물을 올린 네티즌들과 루머 중심으로 편집된 방송 프로그램과의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남은 것은 없었다. 창업멤버들은 심기일전 끝에 재기의 꿈을 이뤘으나 지금도 해당 사건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다고 한다.

각자의 개성을 중시하는 시대임에도 유독 온라인 세계에서 만큼은 쏠림 현상이 심화되며, 앞서 언급한 마녀사냥과 조리돌림으로까지 이어지곤 한다. 한 스타트업의 몰락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사과의 트렌드 역시 변해야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진정성과 신속성을 대체할 개념이 당장은 떠오르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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