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윤원 <중앙대 교수>

세월호 참사로 인한 국가적 집단정신외상현상(Nation-wide collective trauma)이 채 아물기도 전에 최근 급속히 확산되는 메르스공포는 국가안전행정시스템에 대한 국민적 정부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국민안전에 대한 국가행정시스템의 부재이며, 선진행정시스템이 아직도 요원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급속한 경제발전 과정에서 등한시되었던 안전불감증이 도덕적 해이와 악덕기업인들의 탐욕에다 관료들의 무능과 부정부패까지 합쳐져서 연이은 국가적 재앙으로 나타난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첫째, 우리는 사전예방보다 사후 뒤처리에 허둥대다가 조만간 포기하고 수용해버리는 운명결정론적 國民性을 바꿔야 한다. 사고는 ‘예방가능한 偶然’ 아니라 ‘신이 점지한 必然’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토정비결식 업무 해결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재발방지식 근본 해결 방안을 찾아야지 임기응변식 땜질 해결 방안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도 정부도 안전에 대해서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오랜 王朝時代 행정문화의 부산물인 국왕의 萬機親覽型 행정시스템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홍수도 왕의 책임, 가뭄도 왕의 책임’이었던 왕조시대문화는 ‘시스템에 의한 냉철한 法治’보다 ‘왕이 베푸는 따뜻한 人治’를 선호하게 만든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이러한 역사적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오늘날 신자유주의에 근거한 작은 정부시대에서 조차 우리는 모든 사회문제를 정부의 전적인 책임으로 돌리고, 종국적으로는 대통령의 자애로운 人治에서 해결책을 구하려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국가행정시스템은 사라지고 대통령만 모든 책임을 지게 만든다. 아무리 큰 재난 앞에서도 시스템만 제대로 작동되면 대통령은 여유로울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국민안전을 위해서는 안전행정시스템의 원활한 작동이 필수조건이다.

그런데 문제는 시스템 구축에만 몰두한 채 작동에는 무관심한 것이 문제이다.

시스템이란 각 부품들이 제대로 작동된다는 전제조건을 지닌다. 재난이 발생하면 관련 부서가 질서정연하게 부품으로서 작동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안전행정시스템은 각 부서들이 제각각 따로 노는 후진적 모습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에게는 이미 재난 발생 시 25개 재난 유형에 따른 주관 부처 대응지침과 3000여개 이상의 선진적 매뉴얼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장관이 長髮로 애처롭게 지휘하는 모습이 오히려 아름답게 보이는 문화에서 어찌 구조전문가들의 시스템에 의한 업무수행이 가능할 수 있을까. 장관이 아니라 과장의 현장지휘로 안전행정시스템이 가동되어야 진정한 선진행정시스템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선진안전행정시스템 구축보다도 선진적 운영이 더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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