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책신문=김인영 기자) 지난 128() 금융위원회(위원장 임종룡, 이하 금융위)‘2014년 하반기 국내은행 혁신성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평가대상은 시중은행 8곳과 지방은행 7. 이 가운데 시중은행에서는 신한은행이 100점 만점 중 82.65점으로 가장 높았고, SC은행과 씨티은행은 50점 이하로 최하위권에 자리했다.
 
▲ 시중은행 혁신성평가 결과(2014년 하반기 기준)
 
정부는 향후에도 반기마다 혁신성평가 결과를 공개하고 이를 은행 임직원 성과급에도 반영할 방침이지만, 은행들은 은행의 자율성과 영업 특성을 무시한 줄세우기 정책이라며 거센 반발을 하고 있다. 특히 혁신성평가 배점 중 40%에 해당하는 기술금융확산부문에 대한 불만이 거세다. 기술평가 기반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기술금융 확대정책 추진은 은행의 리스크를 증가시키고 보여주기식 실적만 난무하게 된다는 것.
 
그러나 지난 16() 새로 취임한 임종룡 금융위원장 역시,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 뒷받침과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을 목표로 금융개혁 방향 및 추진 전략을 공표한 가운데 기술금융 확대 및 기술투자 활성화를 천명하면서, 현재 금융시장의 뜨거운 감자인 기술금융 논란은 좀처럼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9조원이나 쌓아올린 모래의 성

 
기술금융은 우수한 기술력을 가졌으나 신용등급이 낮아 자금융통이 어려웠던 창업, 중소기업에 대해 담보나 보증없이 기술과 아이디어에 대한 평가를 기반으로 필요자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정부의 적극적인 기술금융 활성화 의도에 따라 금융기관들은 작년 7월부터 기술신용평가기관의 평가서(TCB : Technology Credit Bureau)를 반영해 자금난을 겪고 있는 혁신기업에 대출을 시행하고 있다.
 
세계의 저성장 추세와 지식기반경제의 심화에 따라 기술지식 등은 그 중요성을 더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지식과 기술에 기초한 산업의 발전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기술금융의 중요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는 있으나 영세한 기업인프라와 자금력으로 고전하는 중소기업들을 지원하여, 선도강소기업 성장의 밑거름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일자리와 고부가가치 창출, 산업의 융복합화까지 기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금융은 태생적으로 문제점이 존재한다. 기술금융은 재무제표가 아닌 기술력을 평가해 자금을 지원하는 만큼, 기술개발 및 사업화의 불확실성과 실패의 위험성이 크고, 또한 자금공급자와 자금수요자간의 정보비대칭성이 크다. 다시 말해, 자금공급자는 계약 이전 단계에서 기업의 과대 포장된 정보로 인하여 잘못된 선택(Lemon), 즉 역선택(adverse selection)을 할 위험이 많다.
 
또한 자금공급계약 이후에는 기업활동을 일일이 간섭하거나 알 수 없는 입장에 놓이기 때문에 투자 받은 기업이 돈만 받고 기술개발이나 경영을 게을리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의 야기로 도덕적 해이의 발생가능성이 매우 큰 것이다.(김광희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11)
 
이러한 기술금융의 내재적 특성은 철저한 리스크관리를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은행의 가장 근본적인 경영전략과 상반된다. 기술금융의 대출액이 증가하면 은행의 리스크도 함께 증가하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은행을 대상으로 한 적극적인 기술금융 지원정책에도 정책초기 은행권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한 결과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말 기술신용대출 누적액은 무려 89천억원에 달하는 실로 놀라운 실적을 기록했다.
 
▲ 2014년 TCB 대출건수 및 금액(잠정)
 
위의 그림과 같이 정책 시작점인 7월에는 2천억원에도 못 미치다가 연말에 가까워질수록 대출 실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는 금융당국이 은행별 실적을 공개해 압박하는 등의 강력한 드라이브를 건 점과, 평가 우수은행에게 여러 정책금융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혁신성평가 시행의 결과로 분석된다.
 
그 결과 금융당국은 소기에 목적한 기술금융의 목표를 달성했을까? 규모적 측면에서는 성공을 이뤘으나 질적인 측면에서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지난 24일 국회 정무위원회 신학용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은행들은 대출의 태반을 기존 거래 기업에게 실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의원은 혁신성평가 1위를 차지한 신한은행과 2위 우리은행의 신규기업 기술금융대출 비중이 각각 22%19%에 불과한 점을 지적했다. 기술금융이 기술력을 가진 신생기업 육성에 투자된 것이 아니라, 은행들이 평가실적 부풀리기를 위해 기존 거래 기업들에게 마구잡이로 기술신용대출을 실시했다는 것이다.
 
또다른 문제로, 중소기업대출(자영업자대출 제외) 축소현상이 발생했다. 은행들이 기술금융을 위한 대출액은 크게 늘리고, 중소기업대출은 늘리지 않거나 되레 축소시킨 것이다. 자영업자대출이 통계상 중소기업대출로 분류된다는 점을 악용해, 은행들이 자영업자대출을 기술신용대출에 끼워 넣는 문제점도 발각됐다. 그야말로 9조원이라는 덩치 큰 기술금융 실적이 모래위의 성과 같은 형태로 쌓아 올려진 것이다.
 
 

혁신성평가 개선과 기술금융 발전 노력이 동반되어야

 
이러한 현상을 두고 지난 17() 국회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 금융공정거래팀은 이슈와 논점을 통해, “은행 혁신성 평가제도의 도입목적은 충분이 공감하지만, 무엇보다 은행의 건전성에 기반한 변화와 혁신이 가능하도록 평가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평가지표들을 보면 기술금융이나 투융자 복합금융에 대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 은행의 철저한 리스크 관리가 요구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향후 은행들이 변화와 혁신의 다양성을 기반으로 특화전문화 은행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기술금융과 해외금융, 서민금융 등을 은행 특성에 맞게 분리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술금융확산 평가파트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소리 높였다.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기술금융의 취지가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 지원에 있는데, 혁신성평가 기준은 기업대출 비중이 높은 은행에 맞게 설계됐다, “기술금융 및 중소기업 대출 실적과 관련된 항목의 배점이 100점 중 26점에 달하는 만큼, 소매금융에 강점이 있는 은행은 점수 획득이 사실상 어렵다고 성토했다.
 
김광희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술금융의 현황과 과제학술논문(2011)을 통해, 일찍이 국내 기술금융의 실패와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보고서를 통해 기술평가보증서 담보대출 비중이 과다하여 투자시장 성장이 제약받고 있다, “기술보증서부 담보대출 비중을 줄이고 벤처투자의 역할을 높여가면서, 기술평가대출에 대한 위험 헤징(hedging) 등 다양한 기술금융 상품의 도입으로 전체 기술금융 공급을 늘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김 선임연구위원이 제안한 기술금융상품 스펙트럼(김광희. 기술금융의 현황과 과제. 2011)
 
덧붙여 그는 위의 다양한 기술금융 상품의 도입으로 기술평가 수요가 확대되고, 이를 통해 기술평가 시장의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라 예견했다. 기술평가 수요의 확대는 기술평가모형에 대한 시장 검증 등의 신뢰성 확보 평가기관의 전문성 제고 및 우수인력 유입 평가의 질 향상 평가수요의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적 발전을 이룰 것이라 주장했다.
 
김연욱 마이스터 연구소장은 선진국의 사례를 들어 TCB 신뢰성 확보에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소장은 우리나라의 기술금융과 비슷한 개념으로 미국의 IP(Intellectual Property)금융과 일본의 지재금융이 있다, “두 나라는 우리나라처럼 기술력 평가를 통한 대출이 아니라 지적재산권 바탕의 투자이기 때문에 은행의 리스크관리 측면에서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나라에는 IP금융과 기술금융이 동시에 존재하는 만큼, TCB 신뢰성 제고와 체계적 TCB평가 시스템의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임종룡호, 위기에 처한 기술금융을 구하라

 
잘못된 일은 바로잡기 위해서는 그러한 사안을 시인하고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말이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일 인사청문회 시, 기술금융의 문제점 지적에 대해 담보 위주의 금융 관행을 바꿔보고자 한 전략이었으나, 부작용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17일 취임 후 가진 첫 기자간담회에서 기술금융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 후 문제점을 개선할 것이며, 기술금융 규모를 20조원 이상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금융위는 기술금융 실태조사를 통해 신규벤처창업기업 등의 실제 자금수요에 따라 지원할 수 있도록 질적으로 보완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300억원 규모의 기술가치평가투자펀드와 1,000억원 규모의 지식재산권(IP)펀드 등 기술금융투자도 활성화해 투트랙(Two-track)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의 역할도 강화할 계획이다.
 
기술금융에 대한 사회 각층의 우려와 은행들의 불만을 불식시킬 수 있을지, 새롭게 출범한 임종룡호의 행로가 주목받고 있다.
 
 

저작권자 © 굿모닝경제 - 경제인의 나라, 경제인의 아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