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 지속될 경우…국내만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큰 타격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7일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하고 있다. <뉴스1>
일본 수출 규제 품목의 대체 가능성(출처: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뉴스1>

[한국정책신문=길연경 기자] 삼성전자의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세계 시장 1위를 차지하려는 전략이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수출 규제 강화로 위기에 부딪쳤다. 이재용 부회장은 반도체 참단소재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급히 일본으로 출국했다. 업계는 해외에 있는 일본 기업에 대체조달을 요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일본은 4일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인 포토레지스트(PR·감광액), 고순도 불화수소(에칭 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FPI)의 한국 수출을 제재한 바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9일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 및 영향’이라는 보고서에서 “삼성전자는 포토레지스트 수급 우려로 (파운드리) 사업 확대가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반도체 첨단소재 거래선을 뚫기 위해 지난 7일 일본으로 향했다. 업계에서는 일본 이외에 대만, 싱가포르에 생산 거점을 보유한 에칭가스 공급사 스텔라에게 고순도 불화수소를 해외지점에서 대체조달을 요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IT 업계에 따르면 에칭가스는 독성이 있어 오랜 시간 보관이 어려워 적시공급(Just in time·JIT)이 필수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에칭가스가 장기간 보관이 안되기 때문에 재고 현황이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 부회장이 일본 업체에 최우선으로 에칭가스 우회공급을 요청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불화수소는 대체 수입선 확보 및 국내산 대체가 가능할 것으로 평가되지만, 한계점으로 “공급사가 변경될 때 테스트 기간이 있어야 하는 등 일본 제품의 즉각적인 대체는 어려워 반도체 생산의 감소는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스텔라·모리타 등의 일본 업체에서 바로 고순도 에칭가스를 공급받거나, 국내 협력업체에서 얻은 일반 불화수소를 고순도로 가공한 제품을 조달받고 있다.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공정에서 웨이퍼 위에 회로 모양을 그리는 ‘노광’ 작업에 사용되는 소재다. 특히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현재 1위는 대만의 TSMC로 48%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으며 19%의 삼성전자가 이를 추격하려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 차세대 노광 기술인 EUV(극자외선 노광장치)를 적용시켜 올해 하반기부터 7나노 제품을 양산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EUV용 포토레지스트가 일본 기업들이 전세계적으로 90%이상의 점유율로 독과점 구조를 형성하고 있고 국내 기업은 아직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수급 문제를 겪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폴더블 OLED(올레드) 패널에 사용되나 수입규제의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해 삼성전자가 폴더블 출시를 지연하면서 해당 소재에 대한 수요가 낮아졌으며 2020년 이후 삼성전자가 공급처를 다변화시키거나 ‘울트라 씬 글래스(Ultra Thin Glass)’로 대체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Moody’s)는 8일 신용 전망 보고서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에 단기적으로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가 이용하는 소재의 일본 의존도가 크고 이른 시일 내에 공급처를 다각화하기도 어려워 한·일 갈등이 지속될 경우 한국 기업뿐 아니라 세계 반도체·디스플레이 시장도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정부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 규제 소식에 반도체주가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8일 오전 11시 코스피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보다 1100원(2.41%) 내린 4만4550원에, SK하이닉스는 전 거래일보다 1400원(2.05%) 내린 6만7000원에 거래됐다. LG전자도 2500원(3.44%) 내린 7만100원에 거래됐다.

반면 일본 정부도 일본 기업에 피해를 주려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오히려 반도체 가격 협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김양재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 소재 수출 규제에 따른 생산 차질 가능성은 극히 제한적”이라며 “오히려 생산 차질 우려를 근거로 반도체 가격 협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글로벌 경제 타격을 근거로 외교적 해결로 방향을 잡았다. 다만 우리 기업에 피해가 발생하면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이행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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