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 소진 등으로 메모리 가격 상승 전망…삼성DP 소재 국산화 전망도

<뉴스1>

[한국정책신문=길연경 기자] 일본 정부가 4일 반도체 핵심소재 3종(플루오린 폴리이미드·포토레지스트·에칭 가스)에 대한 수출 규제 심사를 시작함으로써 일본의 경제보복이 가사회되고 있다. 이에따라 이 소재들을 생산하는 일본 기업들은 각 건마다 수출 심사를 정부에 신청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심사 기간은 최대 90일간으로 일본 정부는 심사 과정에서 수출 불허 판정 및 수출 금지 조치도 내릴 수 있다.

반도체 제조과정에서 필요한 세 가지 소재는 일본이 전 세계 시장의 70~80%를 점유하고 있어 일본 의존도가 높은 만큼 국내 반도체 생산 차질과 국제경제에 연쇄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일본은 앞으로 반도체 소재인 실리콘 웨이퍼, 스마트폰 부품인 이미지센서 등 수입규제 품목을 확대할 것으로 알려져 규제의 범위가 확대될 경우 산업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하반기부터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계 1위인 대만 TSMC를 따라잡기 위해 첨단 극자외선(EUV·Extreme Ultra Violet) 라인 양산을 계획하고 있다. 앞서 삼성전자는 기존 장비보다 더 미세하게 패턴을 새길 수 있는 EUV를 세계 최초로 적용시켜 7nm(나노미터) 제품 양산에 성공했다. 

EUV 양산을 위해 해당 공정 중 노광 장비에 들어가는 소재인 포토레지스트(감광액·PR)를 전량 일본으로부터 수입할 예정이었다. EUV 포토레지스트는 JSR·신에츠화학 등 일본 기업만 독점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일 일본 정부가 공표한 수출 규제 품목에 이 소재가 포함돼 제품 생산 계획에 차질이 예상된다.

또한 이번 사태로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 육성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우려가 있다. 지난 4월 삼성전자는 133조원 투자와 1만5000명 고용 창출을 끌어내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부문 세계 1위 기업이 되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다.

반도체 대표 기업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일본 정부가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를 공식화한 지난 1일 발 빠르게 일본에 구매팀을 파견하거나 대만 등 인접 국가들의 일본 업체를 방문해 소재 물량을 확보하는 협의에 들어가는 등 대응에 나섰다. 

한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양사는 한국이 반도체 소재 최대 수입국인 만큼 일본 기업이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어 수출 금지에는 나서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오히려 일본의 수출규제가 국내 메모리 반도체 생산차질을 발생시켜 생산량 감소, 재고 소진 등으로 메모리 가격 상승을 끌어낼 수 있는 기회로 보기도 한다. 삼성전자 반도체 재고 규모는 10조원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의 이번 수출규제로 인해 단기적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받을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노광 공정에서 주로 사용하는 핵심소재(ArF, KrF)가 이번 수출규제에는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정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 정부는 193nm 미만 파장의 빛에 최적화된 레지스트만 규제하기로 했는데 EUV(Extreme Ultra Violet)만 이 규제 대상에 한정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일본 정부의 의도에 대해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 정부가 삼성전자·하이닉스 제품 생산에 실제 차질을 주려기보다는 한국이 최첨단 경쟁력을 지닌 부문에 대한 정밀 타격을 가해 정치 협상용으로 쓰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일본의 수출규제가 장기화되고 일본 경제산업성이 수출규제 확대 및 수출금지 조치에 나설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적지 않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전망이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번 사태가 장기화 될 경우, 일본 의존도가 높은 웨이퍼(반도체 원재료)와 블랭크 마스크(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필름)에 대한 추가 규제가 발표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웨이퍼는 일본이 세계 시장 점유율의 53%를 차지하고 있고, 블랭크는 일본 업체가 과점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디스플레이 부문에서는 삼성과 LG의 상황이 조금 다르다. 3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LG디스플레이는 양산 단계 전인 일부 제품 외에 주력 스마트폰인 LG V50 씽큐 등 LG전자에 공급하는 모든 스마트폰용 OLED 제품에서 일본 수출 규제 소재인 플루오린(투명) 폴리이미드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투명 플로이미드는 유리를 대체하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소재다. 일부 프리미엄급 제품과 폴더블·플렉서블·롤러블 제품에 주로 활용되고 있으며 LG전자가 올 하반기 출시 예정인 롤러블 TV 양산에 필요한 재료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제품 개발을 위해 사용 중인 투명 폴리이미드의 경우 일본산이 아닌 국산을 사용 중”이라고 했다. 투명 플로이미드를 개발·공급 중인 국내 업체로는 코오롱인더스트리, SKC 등이 있다. 

이와 달리 삼성디스플레이는 투명 폴리이미드를 일본 스미토모화학에서 공급받고 있다. ‘갤럭시 폴드’의 경우 초도 물량에 한해 투명 폴리이미드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의 제재가 장기화할 경우 생산차질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삼성도 국산 제품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협력업체에 ‘수출 규제로 인한 생산계획에 변동이 없다’는 내용의 공문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새로운 공급처 확보 및 국산 제품 대체가 오래 걸릴 경우 삼성전자는 차세대 스마트폰 사업 계획 및 일정 자체를 다시 조정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일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해 '명백한 경제 보복'이라고 규정짓고 정부 차원에서 반드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일본이 규제 조치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비롯한 상응한 조치를 반드시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홍 부총리의 상응조치 발언으로 업계는 정부가 일본 수출 규제에 맞대응으로 전면적인 무역보복 확전을 무릅쓰고 국산 제품의 일본 수출을 제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세계 시장 60%를 점유하고 있는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의 일본 수출을 제한하는 방안도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수출을 제한하면 삼성·LG 등 국내 기업으로부터 반도체를 공급받았던 일본 파나소닉과 소니도 타격을 입게  되기 마련이고, 이들 기업과 거래하는 미국 등 전 세계 업계에도 영향을 끼쳐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위치가 난처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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