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방송 합산규제' 국회 논의 6월지나면 내년 총선까지 어려워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뉴스1>

[한국정책신문=길연경 기자] “LTE 때 PC가 폰 안에 들어왔다면, 5G 때에는 TV가 폰 안으로 들어온다”

5G시대가 본격화 됨에 따라 미디어 환경도 급격한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이지만 국내 케이블TV업계의 재편은 '입법리스크'로 난항을 겪고 있다. 특히 KT와 합병을 진행중인 딜라이브는 국회 논의가 장기간 공전되면서 벼랑끝으로 몰리고 있다.

전세계는 구글·페이스북·아마존 등 인터넷 기업뿐 아니라 디즈니·넷플릭스·AT&T 등 콘텐츠 기업간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지형에서 우세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한창이다. 

국내 통신사들도 방송통신 융합이 대세인 가운데 케이블 업계와 인수합병 등 변화를 꾀하고 있다. 케이블 업계도 홈쇼핑 방송 매출 감소로 홈쇼핑 수수료가 둔화되고 가입자들이 IPTV로의 이탈하는 추세에 생존 차원에서 통신사들과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방송통신 융합의 새판을 위한 전환점이 절실한 시기에 국회의 ‘유료방송 합산규제’ 논의는 1년째 결론을 못내고 있다. 유료방송 1위 사업자 KT와 케이블TV 6위업체 딜라이브도 전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 합산규제 논의가 지지부진함에 따라 가장 입장이 난처해진 곳은 케이블TV 업체 딜라이브다. 오는 7월 1조4000억원에 달하는 인수금융 대출 만기가 돌아오는데다 추후 매각 협상시 매각 값에 일정 부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일고 있어서다.

딜라이브 대주주인 KCI(국민유선방송투자)는 지난 2007년 딜라이브 인수를 위해 금융권으로부터 2조 2000억원을 대출받았으며, 2015년부터 딜라이브 매각을 추진해왔다. 인수자를 찾지 못하자 채권단은 2016년 7월 대출금 중 8000억원을 출자 전환하는 동시에 3년간 나머지 금액의 만기를 연장해 준 상황이다. 이제 7월 말까지 1조4000억원 규모의 채무를 상환하지 못할 경우 디폴트(부도)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딜라이브는 지난해 말 KT를 만나 본격적인 인수·합병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 4월에 공시된 딜라이브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은 전년대비 7.9% 감소한 5507억원, 영업이익은 45.3% 감소한 538억원을 거뒀고 영업이익률은 9.8%로 집계됐다. 현금창출능력도 떨어졌다. 지난해 연결기준 상각전영업이익(EBITDA·에비타)은 1758억원으로 전년대비 324억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업계는 실적이 감소했지만 딜라이브가 지니는 매력 자체는 여전하다고 보고 있다. 유료방송 시장점유율 방어를 위한 딜라이브(점유율 6.45%) 의 가치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딜라이브 관계자는 “국회 변수로 인수합병 논의가 예상치 않게 길어지고 있는 만큼 채권단에게 채권 만기 연장을 요청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하면서 “국회가 이미 폐지된 지 1년이 된 합산규제를 붙들고 시장 움직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유료방송 합산규제는 유료방송업계(IPTV·위성방송·케이블TV)의 합산 점유율이 33.33%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을 둔 법안이다. 지난해 6월 일몰된 이후 1년 가까이 재도입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여야 대립 가운데 국회 논의는 공전하고 있다. 정부 부처간 합산규제를 과감하게 완화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재도입 논란도 합일점을 찾지 못하는데다 국회 파행까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10일 과학기술분야, 오는 17일 정보통신‧방송분야 관련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와 비공개 당정협의를 진행한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의 경우 13일 당정협의가 이뤄진다.

17일 있을 협의에서는 합산규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국회가 지난 4월 정보통신분야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합산규제 재도입보다는 반시장적인 점유율 규제를 폐지하고 방지책으로 이용자 피해 및 시장지위남용 등 부작용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사후규제안’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방위가 안건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이것도 무용지물이다. 과방위는 지난 4월 17일 황창규 KT 회장 청문회 이후 2개월 간 휴회했다.

합산규제 관련 논의의 또 다른 걸림돌은 정부 부처간 극명한 입장차다. 과기정통부와 방통위 핵심 쟁점은 사후규제안이다. 시장 경쟁 활성화를 위해 과방위의 요청에 과기정통부는 합산규제 및 시장점유율 폐지하고 유료방송 요금 신고제 등 합산규제 완화를 골자로 하는 유료방송 규제개선 방안을 내놓았으나 방통위는 공정경쟁 환경을 조성을 위해 유료방송 요금 인가제와 시장집중사업자 직접 지정 등 규제를 통한 독과점 제한을 앞세워 이견 조율에 난항을 겪게 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기준 유료방송시장 점유율은 △KT(위성방송 KT스카이라이프 포함) 30.86% △SK브로드밴드 13.97% △CJ헬로 13.02% △LG유플러스 11.41% △티브로드 9.86% △딜라이브 6.45% △CMB 4.85% △현대HCN 4.16% 순이다.

유료방송시장에서 선두로 달리고 있는 KT(30.86%)는 LG유플러스와 SK텔레콤이 각각 케이블TV 업체 CJ헬로와 티브로드를 인수 및 합병을 확정한 것과 달리 합산규제 재도입 논의에 묶여 딜라이브 인수·합병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LG유플러스는 CJ ENM이 보유한 CJ헬로 지분 53.92% 인수했다. 합병이 아닌 CJ ENM이 보유한 CJ헬로 주식을 인수해 최대주주 자격만 획득했다. SK텔레콤도 최근 자회사 SK브로드밴드와 태광산업 자회사 티브로드의 합병을 추진하기 위한 본 계약을 체결했다.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심사를 거쳐 인수·합병이 확정될 경우 양사의 유료방송시장 점유율은 각각 24.43%, 23.83%로 KT와의 격차는 한 자릿수대로 좁혀진다.

만약 합산규제가 재도입되면 KT는 점유율 33%에 근접해 딜라이브의 인수합병이 제한된다. 합산규제로 KT의 발을 묶어놓은 채 경쟁사에만 가입자를 단번에 확대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형평성에 어긋난다. 또 딜라이브 등 나머지 3사는 군소업체로 전락하게 된다.

여야의 대치가 계속되는 상황으로 6월 임시국회도 요원한 상황이다. 특히 이번 임시국회가 사실상 관련 법안을 검토할 수 있는 마지막 국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9월 정기국회는 국정감사로, 이듬해 21대 국회의원 총선준비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회 과방위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6월 회의 일정이 잡혀있지 않다”면서 “여야간 대립뿐만 아니라 과방위 차원에서도 '방통위의 가짜뉴스 대응'을 둘러싸고 갈등이 있어 여야 간사 협의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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