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C, 대웅제약에 보툴리눔 균주 제출 명령…진실공방 결론 날까

메디톡스(왼쪽)와 대웅제약 사옥 전경 <각 사 제공>

[한국정책신문=이해선 기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대웅제약 나보타의 보툴리눔 균주 및 관련 서류 제출을 명령함에 따라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대웅제약과 메디톡스의 ‘보톡스 전쟁’이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특히 그간 기술도용 의혹을 받으면서도 보툴리눔 균주와 관련 서류 제출을 거부해온 대웅제약에게 ‘강제 제출 의무’가 부여됨에 따라 양 사의 주장에 진실 여부가 가려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미국 ITC 행정법원이 지난 8일 대웅제약에 ‘나보타’의 균주 및 관련 서류와 정보를 메디톡스가 지정한 전문가들에게 오는 15일까지 제출할 것을 명령했다. 

이는 지난 2월 메디톡스와 엘러간이 대웅제약과 에볼루스(대웅제약의 미국 판매 협력사)를 ITC에 제소한데 따른 조치다. ITC는 지난 3월 공식 조사에 착수했다.

ITC는 해외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개발한 제품이 미국에 수입돼 자국 산업에 피해를 주는 것을 조사하고 실질적인 수입 제한 조치를 취하는 기관으로, 만약 ITC가 메디톡스의 손을 들어줄 경우 대웅제약의 나보타 미국 수출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보톡스 논란의 시작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국내에서 최초로 국산 보톡스 ‘메디톡신’을 출시한 메디톡스는 2016년 후발 업체인 대웅제약의 ‘나보타’에 관한 기술도용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메디톡스는 2014년 출시된 나보타의 보툴리눔 균주 핵심부분(염기서열)이 메디톡신의 균주와 100% 일치한다는 점을 두고 기술도용을 주장했고, 대웅제약은 “근거 없는 비방”이라며 도용 가능성을 일축했다.

메디톡스는 대웅제약 측에 균주 출처에 대한 공개토론을 제안했으나 대웅제약은 이에 응하지 않았고, 2017년 5월 대웅제약은 미국 FDA에 나보타 품목 허가를 신청했다.

이에 메디톡스는 미국 오렌지카운티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현지 법원은 “한국에서 별도로 소송을 진행하라”는 판단을 내렸다. 메디톡스는 곧바로 국내 소송을 진행하는 한편 이와 별개로 같은 해 12월 FDA에 나보타 균주 출처에 대한 명확한 확인이 있기 전까지 품목허가신청을 승인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시민청원서를 접수하기도 했다. 
 
메디톡스는 청원서를 통해 모든 보툴리눔 톡신 제품의 품목허가신청에 전체 유전자 염기서열분석을 포함하고, 나보타 균주의 출처를 공개할 것도 함께 요구했다.

하지만 FDA는 지난 2월 1일 메디톡스의 청원이 거부됐음을 공지함과 동시에 나보타의 미국 판매 허가를 승인했다. 메디톡스가 인용한 대웅제약의 공식 진술에서 허위성을 의심할만한 부정행위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메디톡스의 지속적인 기술도용 의혹 제기에도 불구하고 대웅제약 나보타는 국내 보톡스 제품으로는 최초로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준비를 마쳤고, 마침내 미국 공식 론칭을 예고하며 두 회사의 ‘보톡스 전쟁’은 대웅제약이 앞서나가는 듯 했다.

반면 최근 ITC는 대웅제약의 부정행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FDA의 판단에 반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보툴리눔 균주와 관련 서류를 제출하지 않겠다는 대웅제약 측의 요청을 거부하고, 메디톡스가 지정한 전문가에게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균주와 관련 서류를 제공하도록 명령한 것.

대웅제약은 그간 “전세계적으로 제품 품목허가신청에 있어 전체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을 포함하는 사례는 없다”며 해당 자료 공개를 거부해 왔으나 이번 명령은 ITC의 증거개시 절차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공개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ITC는 일방당사자가 보유하고 있는 소송 관련 정보 및 자료를 상대방이 요구하면 제출하도록 의무를 부여하는 ‘증거개시 절차’를 두고 있기 때문에 관련 증거가 해당 기업의 기밀이더라도 은폐하는 것이 불가하다.

이에 메디톡스는 이번에야 말로 확실히 기술도용 의혹을 확실히 검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과학적으로 공정하게 검증할 수 있는 복수의 국내 및 해외 전문가를 ITC에 제출했으며, 나보타의 균주 및 관련 서류와 정보를 확보해 전체 유전체 염기서열분석 등 다양한 검증 방식으로 대웅제약의 불법 행위를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대웅제약이 타입 A 홀 하이퍼(type A Hall hyper) 균주를 용인의 토양(마구간)에서 발견했다는 주장은 명백한 허구임이 증명될 것”이라며 “이는 출처가 불분명한 보툴리눔 균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20여개가 넘는 국내 기업들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웅제약도 메디톡스 측에 균주를 제공할 것을 요청한 상태다. 단, 이는 ITC의 명령과는 무관하며 대웅제약의 요청에 따라 메디톡스는 균주를 제공할지 여부를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미국 소송은 한국 소송과 달리 증거수집(Discovery) 절차를 통해 양 측이 소송에 필요한 자료를 서로에게 요구하여 전달받도록 되어 있다”며 “이에 따라 대웅제약 역시 메디톡스의 균주를 제공받아 포자 형성 여부 감정과 유전체 염기서열분석 등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간 기업 기밀 사안인 만큼 균주를 공개하지 않아왔지만 ITC로부터 제출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이에 성실히 임할 예정”이라며 “메디톡스에서도 균주를 제공한다면 미국소송 뿐만 아니라 국내 소송에서 양사 균주의 포자 형성 여부를 비교함으로써 메디톡스의 기술도용 주장이 허구임을 입증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대웅제약의 미국 판매 협력사인 에볼루스는 현지시간으로 오는 15일 미국에 나보타를 공식 론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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