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장 이미 포화 '비교적 늦은 진출' 평가…왓슨스 실패 사례 등 '찻잔 속 태풍' 될지도

<세포라 코리아 제공>

[한국정책신문=한행우 기자] 세계 1등 뷰티 편집숍 세포라가 오는 10월 한국 진출을 공식화하면서 국내 화장품 업계가 향후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그룹(LVMH)이 운영하는 세포라는 34개국에 2300여개 매장을 두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글로벌 화장품 전문 유통 체인이다.

국내에서는 신세계의 화장품편집숍 ‘시코르’, CJ그룹 계열의 H&B스토어 ‘올리브영’ 등과 사업 성격이 겹치는 만큼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고 있으며 화장품 유통의 축이 원브랜드 로드숍에서 편집숍으로 이동하는 데 세포라가 가속도를 붙일 것으로 보인다. 

16일 화장품업계에 따르면 세포라 코리아는 오는 10월24일 서울 강남구 파르나스몰에 547㎡(165평) 규모의 국내 첫 매장을 연다. 

세포라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독점 브랜드부터 세포라 자체 개발(PB) 브랜드인 세포라 컬렉션까지 스킨케어, 메이크업, 향수, 바디와 헤어를 포함한 다양한 카테고리의 제품을 한자리에 선보이며 국내 고객에게 더욱 폭넓고 다양한 선택권을 제공할 예정이다.

세포라 코리아는 파르나스몰점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서울 내 온라인 스토어를 포함한 6개 매장을, 2022년까지 13개 매장을 오픈하며 소비자 접점을 적극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규모나 명성에 비해 국내에는 비교적 뒤늦은 진출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수년간 진출설이 시장에 파다했으나 올해 들어서야 계획은 구체화됐다. 이미 포화상태인 국내의 촘촘한 화장품 유통망을 두고 진출 여부를 고민했을 거라는 분석이다. 

화장품 편집숍 및 국내 H&B스토어의 성장세를 지켜보며 성공 가능성을 타진한 뒤 진출 시기를 조율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멀티 브랜드 유통 채널에 대해 높아진 소비자 관심에 힘입어 한국 시장 진출을 결정했다는 게 세포라 측 설명이다. 

세포라의 경쟁 상대는 신세계의 시코르,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움 등 화장품만을 취급하는 뷰티 전문 매장과 CJ올리브영, GS리테일의 랄라블라, 롯데의 롭스, 이마트 부츠 등 화장품은 물론 건강식품, 일반 소비재도 함께 판매하는 H&B스토어로 압축된다. 

시코르는 이미 고급화 전략으로 시장에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올리브영은 국내 1000여개 이상의 지점을 가지고 있으며 매출 1조원을 웃도는 H&B스토어 압도적 1위 브랜드다.

여기에 세포라가 ‘메기효과’를 불러와 국내 편집숍 시장을 더 키울 수 있다는 긍정적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메기효과란 막강한 경쟁자의 존재가 다른 경쟁자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것을 말한다. 

2014년 ‘가구공룡’ 이케아의 국내 진출 당시 한샘 등 국내 가구업체들이 여기에 기대감을 걸기도 했다. 실제 이케아 진출로 인테리어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증폭하면서 홈퍼니싱 시장이 확대, 국내 상위 가구업체들의 매출도 동반 성장하며 이 효과를 증명한 바 있다. 

김동주 세포라 코리아 대표이사 역시 “국내 뷰티 시장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며 시장 확장에 기여할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찻잔 속 태풍’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도 공존한다.

해외 H&B 사업자의 한국 진출 실패 사례로는 홍콩 왓슨스가 대표적이다. 2005년 국내 기업인 GS리테일과 합작 법인을 설립하고 한국에 발을 들였으나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사업이 계속해 부진하자 왓슨스는 시장 철수를 결정했다.

GS리테일은 ‘왓슨스’ 꼬리표를 떼고 자체적으로 ‘랄라블라’를 운영하고 있다.

신세계 이마트 역시 2017년 영국 1위 H&B 월그린 부츠 얼라이언스(Walgreen Boots Alliance)와 손잡고 국내 ‘부츠’ 매장을 열었으나 시장에서 큰 반향을 얻지 못하는 상태다. 

때문에 세포라가 국내 대기업과의 연합 작전 대신 독자 노선을 택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시너지를 낸 좋은 선례가 없어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부 화장품 매니아들의 경우 세포라 오프라인 매장을 찾아갈 수 있지만 일반 소비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처음 국내 진출 얘기가 돌던 2~3년 전이면 몰라도 지금은 다소 늦은 감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업계 전체의 고민은 소비자들의 구매패턴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인데 결국 세포라의 경쟁상대도 국내 화장품 기업들이 아닌 변화한 온라인 중심 소비문화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줄줄이 적자로 돌아서며 고사 위기에 내몰린 국내 원브랜드 로드숍 업계로서는 세포라 진출이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국내 화장품 유통과 소비의 중심 축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원브랜드 로드숍에서 멀티 편집숍으로 이동하며 중견업체들이 대거 실적부진에 신음하고 있는데 ‘엎친데 덮친 격’이 되어서다.

아모레퍼시픽 등 선두 기업들은 아리따움과 같은 기존 자사 유통망을 빠르게 편집숍으로 전환하며 시류에 맞추고 있지만 중소업체들은 생존경쟁에서 갈수록 밀려나는 처지다. 

1세대 로드숍 스킨푸드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매각절차에 들어간 것을 필두로 지난해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 적자, 네이처리퍼블릭 적자, 토니모리 적자, 에뛰드 적자 등 대부분 고전하고 있다.

그나마 흑자를 내고 있는 LG생활건강의 더페이스샵, 아모레퍼시픽의 이니스프리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뒷걸음질 치고 있는 속사정은 비슷하다. 

로드숍 브랜드 한 관계자는 “강력한 경쟁상대의 등장과 변화의 바람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력과 자금력이 뒷받침되는 기업들의 경우 크게 우려할 게 없을 수 있지만 대부분 중소기업들이 형성하고 있는 국내 원브랜드 로드숍 시장은 생존경쟁이 더욱 치열해 질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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