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기존 제재 수위 낮춰 '기관경고' 결론···편법 거래 수단 악용 우려도

최태원 SK그룹 회장 <뉴스1>

[한국정책신문=김하영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불법대출을 해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투자증권(대표 정일문)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예상보다 낮은 수준의 징계를 받게 됐다. 당초 한국투자증권에 중징계를 통보하고 관련 논의를 4개월간 끌어온 금감원이 제재 수위를 번복하자, 이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 3일 제재심의위원회(이하 제재심)를 열고 한국투자증권 발행어음 불법대출 혐의에 대해 심의한 결과, 기관경고(단기금융업무 운용기준 위반), 과징금 및 과태료 부과, 임직원에 주의~감봉 조치를 내리기로 결정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5월 8일부터 6월 1일까지 한국투자증권에 대한 종합검사를 통해 초대형 투자은행(IB) 관련 업무 전반을 검사한 바 있다. 당시 금감원은 검사 결과에 따라 한국투자증권에 기관경고와 임원해임 권고, 일부 영업정지 등의 중징계 조치안을 사전 통지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2017년 8월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1673억원을 SPC인 키스아이비제16차에 대출해줬다. 이 SPC는 해당 자금으로 SK실트론 지분 19.4%를 인수했고, SK실트론 지분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ABSTB)를 발행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SPC가 최 회장과 총수익스와프(TRS·Total Return Swap) 계약을 체결했다는 점이다. 최 회장은 이 계약을 통해 주가변동에 따른 손실과 이익을 모두 가져가는 대신 자기 자금 없이 SK실트론 지분 19.4%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금감원은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 자금이 SPC를 거쳐 최 회장에게 흘러간 것으로 보고, 사실상 한국투자증권이 최 회장에게 ‘개인대출’을 해줬다고 판단했다. 반면, 한국투자증권 측은 SPC에 자금을 빌려줬기 때문에 ‘기업대출’이라고 반박해왔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두 차례의 제재심에서 금감원은 해당 입장을 고수했지만, 이에 반대하는 일부 제재심 위원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지난 2월과 3월 열린 제재심에서는 해당 안건이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결국 지난 3일 열린 제재심에서 최종 결론은 경징계 수준에서 일단락됐다.

금융권에선 이번 사안이 발행어음과 관련된 첫 제재라는 점에서 유사 선례가 없고, 업계에 미칠 파급효과 등이 감안된 조치였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SPC를 통한 대출이 관행적으로 이뤄져 온 만큼 향후 발행어음 대출 범위, SPC와 TRS의 활용 방식 등에 미칠 영향력이 클 수 있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재벌 봐주기식 결론이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이번 경징계 제재가 ‘나쁜 선례’로 남아 자칫 편법 거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 회장이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 대출을 통해 결과적으로 SK실트론 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다른 개인들도 증권사에서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을 SPC를 거쳐 편법으로 대출을 받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이번 사안은 초대형 투자은행으로서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아 발행어음 사업을 하는 증권사에 대한 첫 제재 사례다. 제재안은 증권선물위원회 심의 및 금융위원회 의결을 통해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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