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사 599개 중 연구·생산설비 갖춘 곳 50개 미만…비정상적구조 개선 필요

제약사 연구원이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한미약품 제공>

[한국정책신문=이해선 기자] 정부가 복제약(제네릭) 난립을 막기 위해 공동위탁 생동성시험 폐지 방침을 밝힌데 이어 제네릭 약가 제도 개편을 예고함에 따라 국내 제약사의 8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소제약사들이 존폐위기에 몰릴 전망이다.

공동생동 폐지로 생산원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제네릭 가격까지 떨어지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면 경영난 악화로 무너지는 제약사들이 속출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20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2012년 일괄 약가 제도 시행 이후 7년 만에 제네릭 약가제도를 개편한다.

세부 개편안이 확정되지는 않았으나 현재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절반 수준인 제네릭 가격을 30%까지 내리고 20개 까지만 가격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자체 생동성시험 △제조 △원료의약품 등록이라는 3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53.55%, 두 가지는 43.55%, 한 가지는 30.19%까지 약가를 보전할 수 있는 ‘계단식 조정안’이 유력시 되고 있다. 또한 21번째 제네릭 품목부터는 기존 최저가의 90%로 책정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지난해 발사르탄 사태로 국내 제약업계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제네릭 난립 문제를 겪고 있음을 체감하게 된 후 이를 정상화 하기위한 후속 조치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발간한 ‘2017 제약산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국내 의약품 제조업체수는 848개에 달하고 있다. 이 중 생산실적이 있는 의약품 생산업체수는 총 599개로 나타났다. 599개 생산업체 중 완제의약품이 353개소, 원료의약품이 246개소다.

완제의약품 생산업체 중 매출 1000억원 이상인 업체는 총 42개에 그쳤다. 하지만 전체 8%에 불과한 42개사가 전체 완제의약품 시장에서 차지하는 생산비중은 67%에 달했다.

국내 완제의약품 생산 업체 중 개발에서 생산까지 능력을 모두 갖춘 제약사는 50여개 수준으로 알려진 만큼 국내 제약업계는 80% 이상이 신약 개발이 아닌 제네릭 중심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서 제약사가 제네릭을 출시하기 위해서는 오리지널 의약품과 동등함을 입증하기 위한 ‘생물학적동등성시험(생동)’을 진행해야 한다. 과거에는 한 품목당 2개 업체에 한해서만 공동으로 생동을 진행하는 것을 허용했으나 지난 2011년 관련 일몰규정 폐지로 제한이 사라지며 제네릭 출시가 급증하게 됐다.

제네릭 난립 문제로 국내 출시되는 약 품종은 비정상적으로 많은 상황이다. 제약시장 규모가 우리나라의 20배 이상인 미국에서 출시되는 약품이 5000점 정도인데 국내의 경우 보험 적용 약품만 총 2만9000점에 달한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제네릭 중심의 중소제약사가 80% 이상이다 보니 국내 제약업계의 경우 해외 사례와 비교해 규모에 비해 제약사 수 역시 비정상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한양행 제공>

가까운 일본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난해 일본 제약협회가 발간한 업계보고서(JPMA Data Book 2018)에 따르면 일본 제약업계는 국내와 비교해 시장규모가 약 6배 이상 크지만 2015년 기준 일본 제약사의 수는 국내보다 적은 305개에 그쳤다.

일본 제약산업의 경우 1970년대부터 꾸준히 성장하며 1995년 제약업체는 1500여개에 달했다. 하지만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지출이 높아짐에 따라 약가개정 및 의료제도 개혁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약가가 인하되며 내수시장이 둔화됐다.

내수부문의 정체 속 소형 제약사들은 도태된 반면 경쟁력 있는 일부 제약사는 R&D 투자를 늘려 적극적으로 신약개발에 집중했다. 그 결과 다수의 블록버스터급 신약을 개발, 해외진출에 성공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 하게 된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신약개발에 집중하는 상위제약사와 소규모 제약사간 인수합병이 활발히 진행되며 일본 제약기업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했으나 같은 시기 일본 의약품 수출금액과 해외진출 기업 수는 함께 증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내수시장 성장이 둔화됨에 따라 본격적인 해외산업 확대와 활발한 M&A 활동, R&D 집중을 통해 일부 상위 제약사들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일본은 2016년 기준 전 세게 의약품 시장(약 1250조원) 점유율 9.5%로 글로벌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글로벌 점유율은 1.4%로 13위다.

국내 제약업계는 지난 2000년 의약분업과 2012년 일괄약가인하를 겪으며 일반의약품에서 전문의약품 중심으로 시장 변화를 겪은 바 있다.

일반의약품 중심으로 성장했던 동화약품, 일양약품 등은 매출 순위가 크게 하락한 반면 전문의약품 중심으로 사업을 개편한 유한양행과 대웅제약 등은 최 상위 제약사로 올라서게 됐다.

이번 제네릭 약가개편이 제네릭 중심의 사업을 진행해온 중소 기업사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만큼 체질개선을 이루지 못한다면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이는 국내 제약업계의 심각한 제네릭 난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번은 겪어야 할 진통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발사르탄 사건을 계기로 국내 제네릭 난립의 심각성이 수면위로 떠올랐다”며 “실제 우리나라에서 발사르탄 원료로 만든 제네릭 고혈압약은 500개가 넘는데 반해 영국은 2개사 5개 품목, 미국 3개사 10개 품목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공동생동이 허용되며 제네릭 시장의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그 수가 급증하는 계기가 됐다”며 “공동생동 폐지와 제네릭 약가 인하를 겪으며 중소제약사들이 다수 무너질 수 있겠지만 지금의 비정상적인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 한 차례는 겪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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