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부진에 '화장품' 등으로 변신 꾀하는 국내 기업들…멀어지는 '패션강국' 꿈 씁쓸

[한국정책신문=한행우 기자] 최근 SPA ‘공룡’ 유니클로를 취재하며 이 회사를 운영하는 에프알엘코리아의 재무제표를 상세히 살펴보게 됐다. 이 회사는 지난해 1조3732억원의 매출과 2344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둬 사상최대의 실적을 올렸다. 1대 주주(51%)인 일본법인으로 보내지는 배당금과 로열티 등을 합산하니 지난해 일본으로 빠져나간 돈은 900억원을 상회했다. 

국내 소비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푼돈이 모여 이룬 ‘태산’ 같은 액수다. 

국내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지만 그 뿌리가 일본에 있으니 사실상 일본기업인 게 맞다. 번 돈을 일본으로 보내는 건 (불편한 감정을 덜어내고 보자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2대 주주인 롯데쇼핑(49%) 역시 일본에서 출발했으니 어느 쪽으로 봐도 유니클로의 왜색은 짙다.  

우익·친일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전범기 이미지가 포함된 광고로 뭇매를 맞아왔지만 유니클로는 굳건했다. 애국심에 호소해 소비자들의 발길을 돌려세우는 전략은 이제 시대착오적이다. ‘가성비(가격대비성능)’ 하나로 지켜온 유니클로의 ‘1조' 벽은 높다. 

국내에서는 이랜드 ‘스파오’, 신성통상 ‘탑텐’,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에잇세컨즈’ 등이 SPA에 도전했지만 유의미한 경쟁자로 성장하지 못했다. 왜 우리는 유니클로 같은 글로벌 패션브랜드를 가질 수 없을까, 의문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생겨나는 대목이다. 

특히 이서현 사장이 진두지휘했던 에잇세컨즈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컸다. 1위 기업 삼성이라면 해 볼만하겠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에잇세컨즈는 스파오와 탑텐조차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만성화된 시장 침체에 국내 패션기업들은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있다. 주력인 패션은 점차 줄이고 다방면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는 식이다.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지만 패션 정통성을 지켜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다소 뼈아프다. 

삼성물산 패션은 최근 부진한 패션브랜드를 접는 대신 스웨덴의 ‘무인양품’이라 불리는 ‘그라니트’, 프랑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메종 키츠네’를 각각 들여왔다. 

LF는 일찌감치 변화를 꾀했다. 2014년 사명을 ‘LG패션’에서 ‘LF(Life in Future)’로 바꾸며 이름에서 ‘패션’을 지웠다. 이후 과감한 인수·합병전략으로 식품, 유통, 화장품 등으로 사업 외연을 넓혔고 지난해 말에는 국내 3위 부동산 신탁회사 코람코자산신탁도 인수했다.

3월에는 주주총회를 통해 주방용품, 전기·전자용품 제조·판매업으로 사업목적도 추가할 예정이다. 이미 온라인몰을 통해 소형가전을 판매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도 화장품으로 재미를 보고 있으며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의 ‘여성복 명가’ 한섬도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 것을 최근 예고했다. 국내 대표적인 패션 ‘빅4’ 기업들이 모두 돈 되는 ‘부업’으로 눈을 돌리는 셈이다. 

각자 생존을 타진하는 모습이지만 패션 ‘한 우물’ 전략의 부재는 아쉬움을 낳는다. 본업인 패션 연구에 더 큰 자본과 시간을 투자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아서다. 

왜 우리는 유니클로 같은 ‘메가히트’ 브랜드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지 진지한 고민과 철학은 빠진 채 화장품·라이프스타일브랜드 등의 일시적 인기에 편승하려는 계산이 읽힌다. 

유니클로는 명품브랜드가 아니다. 뛰어난 디자인, 범접할 수 없는 고품질도 아니다. 가격 대비 괜찮은, 무난함이 그들의 무기다. 소비자들의 일상을 파고드는 그 ‘평범성’조차 우리 패션기업들은 흉내내는 데 실패했다. 

시장을 읽는 혜안이 없는 탓인지, 기술력이 부족한 탓인지 알 수 없다. 부진한 실적에 패션 바깥에서 활로를 모색하는 국내 기업들을 비난만 할 수도 없다.

다만 지금처럼 주력인 패션사업에 힘을 실어주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유니클로의 폭발적 성장을 담장 너머 구경만 하는 처지에 머물까 우려할 뿐이다. 패션강국의 꿈은 멀어지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이 막대한 로열티와 배당금에 웃을 때 관망만 해야 하는 국내 현실은 씁쓸함을 남긴다. 

저작권자 © 굿모닝경제 - 경제인의 나라, 경제인의 아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