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의존도 컸던 탓 줄줄이 내리막…대기업 투자 줄이고 중소기업은 생존 걱정

위기 맞아한 로드샵 화장품 매장

[한국정책신문=한행우 기자]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을 필두로 중국시장에서 가파른 성장을 거듭해왔던 국내 화장품기업들이 대기업을 제외하고 최근 존망의 기로에 섰다. 중국 의존도가 컸던 업계 특성상 한한령·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보복 등의 리스크를 이기지 못하고 급격한 내리막길로 접어든 것. 

한동안 업계 3위 자리를 굳혔던 △에이블씨엔씨(미샤), 브랜드숍 전성기를 열었던 △더페이스샵 △이니스프리 △네이처리퍼블릭 △토니모리 △에뛰드 △잇츠스킨 △스킨푸드 등 1세대 로드샵들은 당장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대부분 실적 ‘낙제점’을 받아 들고 살 길 모색에 골몰하는 모습이다. 

13일 아모레퍼시픽의 대규모 투자 철회 소식이 전해지는 등 업계 분위기가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12일 공시를 통해 경기 용인에 건립하기로 한 1630억원 규모의 뷰티산업단지 투자 계획을 전면 철회한다고 발표, 충격을 안겼다.

2017년부터 2년 연속 이어진 실적 부진이 원인이다. 대규모 투자보다는 내실 다지기로 방향을 튼 것. 부동의 업계 1위였던 아모레퍼시픽 마저 냉랭해진 중국시장의 타격을 피해가지 못한 셈이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지난해 6조782억원의 매출과 549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1년 전보다 매출은 1% 늘었고 영업이익은 25% 감소했다.

그룹 전체의 영업이익은 2016년 1조828억원에서 2017년 7314억원, 지난해 5495억원으로 2년만에 반토막 났다. 업계 1위 자리마저 경쟁사인 LG생건에 내어주는 ‘쓴맛’을 봐야했다.

LG생건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내는 등 꾸준히 선전, 그나마 체면을 지켜냈지만 중국시장에서의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해 5월 중국에서 자사 단일 브랜드숍 ‘더페이스샵’과 편집숍 ‘네이처컬렉션’ 오프라인 매장을 모두 철수하면서 위기가 감지됐다. 중국법인이 수년째 적자를 내면서 중국 현지 영업 전략을 효율성에 맞춰 전면 개편하게 된 것.

그나마 자본과 기술력을 보유한 1·2위 기업은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모습이지만 중소업체들이 나눠 먹던 로드샵 시장은 말 그대로 존폐기로에 놓였다. 

‘미샤’로 유명한 에이블씨엔씨는 꾸준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3분기 연결기준 영업손실은 131억8708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적자로 돌아선 것으로 집계됐다. 인기나 인지도 면에서도 예전의 명성을 잃고 있다는 평이다. 

에이블씨엔씨는 유망한 중소 화장품 회사를 잇달아 인수하며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있다. 화장품 수입 유통 기업 ‘제아H&B’와 더마 코스메틱 화장품 업체 ‘지엠홀딩스’, ‘미팩토리’ 등을 최근 품에 안았다. 

신규 인수한 회사들의 영업·마케팅·제품력에 기존 에이블씨엔씨가 보유하고 있던 생산·물류·유통·해외 인프라를 더해 성장을 가속화한다는 계획이지만 업계 반응은 회의적이다. 

실적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몸집 불리기로 오히려 위기를 자초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먹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라는 카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스킨푸드는 지난해 10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기업회생 절차개시를 신청했다. 최근 4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한 데다 가맹점 제품 공급에도 차질을 빚어왔다.

사실상 정상적인 영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태라는 얘기다. 

지난 1월에는 스킨푸드 채권자들이 조윤호 대표이사를 고소하는 등 계속해 잡음이 새어 나오고 있다. 현재 스킨푸드는 시장에 매물로 나와있지만 2월 현재까지 마땅한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주인을 찾지 못한다면 시장에서 영영 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2016년 ‘정운호 게이트’로 직격탄을 맞은 네이처리퍼블릭은 브랜드 재건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정운호 게이트’는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전 대표이사가 마카오에서 원정 도박을 한 혐의로 구속된 이후 최유정 변호사, 홍만표 변호사, 우병우 전 민정수석, 진경준 전 검사장이 연루된 법조 비리 사건으로 확대된 일을 말한다. 

당시 이미지에 크게 타격을 입은 네이처리퍼블릭은 이후 매출·영업익이 내리막길을 걸었지만 실적 부진 매장을 정리하는 등 ‘솎아 내기’ 작업을 통해 다소 안정세를 찾아가는 모습이다. 

브랜드 ‘잇츠스킨’을 운영하는 잇츠한불은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2154억원, 208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2.3%, 54.2%씩 감소했다.

토니모리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토니모리의 시가총액은 3년 사이 6000억원 이상 증발했다. 2015년 상장 당시 8300억원에 달했던 토니모리 시총은 지난해 1900억원대로 내려앉았다.

13일 현재 2000억원대까지 다소 올랐으나 위기론은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있다. 

중국을 등에 업은 화장품 전성기는 끝났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대륙만 바라보던 마케팅 전략에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하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한 관계자는 “중국에서 한때 한국 화장품 열풍이 불며 각 기업들의 실제 역량보다 오히려 더 좋은 실적을 거둔 측면이 있다”며 “(그간의 호실적에) 거품이 있다는 건 업계 내부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이라고 답했다. 

이어 “내실을 다지며 계단식 성장을 준비해야 할 때”라며 “동남아나 미국·유럽 등 그간 개척이 미비했던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전략을 새롭게 짜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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