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건설사 이란공사 계약해지 잇달아…'수주가능성' 축소 우려

미국의 이란 경제제재 여파로 국내건설사들의 이란공사 계약이 해지되고 있다. 계약해지에도 직접적인 손해는 없지만, 문제는 비어가는 곳간과 줄어드는 수주동력에 있단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현대건설의 이란 사우스파 4·5단계 가스처리시설의 모습. <뉴스1>

[한국정책신문=서기정 기자] 미국의 이란제재 여파로,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사업에 대한 시름이 한층 더 깊어지고 있다. 대림산업에 이어 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도 이란과 계약한 대규모 공사가 해지된 것이다.

경제제재로 인해 금융조달이 어려워진 것이 해지 원인인 만큼, 지난해 이란공사를 수주한 SK건설 또한 향후 계약이 해지될 가능성이 높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건설사가 수주한 이란공사들은 모두 착공 전이라 계약해지에도 직접적인 손해는 따르지 않는다. 문제는 비어가는 수주곳간을 채울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주력시장인 중동의 수주규모가 줄고있는 추세인데다, 이란의 정치적 리스크까지 더해져 건설사들의 수주활동폭이 더 좁아질 상황에 몰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국제유가가 올라도 중동시장에서 이렇다 할 수주성과가 없음을 지적하며, 시장에 발맞춰 사업을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국내건설사들이 시야를 넓혀 미국·유럽선진국 등에서 투자가 크게 늘고있는 인프라시장에 주목해야한단 설명이다.

◆ 미국발 이란제재, 잇딴 이란공사 계약해지

현대건설은 지난달 29일 이란 아흐다프(AHDAF)와 체결한 5947억원 규모의 이란 석유화학 생산설비 공사 계약을 해지 했다고 공시했다.

이 공사는 현대건설이 현대엔지니어링과 함께 지난해 3월 공동 수주한 것이다. 총 공사비는 32억달러(약 3조7000억원)로 현대엔지니어링이 3조1000억원, 현대건설이 6000억원가량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지난 7월부터 미국의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가 재개되면서 결국 실제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계약효력 발생 선결조건이 ‘금융조달’이었는데, 이란제재로 금융조달이 되지 않아 계약이 취소된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계약해지는 예견된 일이었다. 앞서 대림산업이 지난해 수주한 이란 이스파한 정유공장 공사(약 2조2000억원)가 자금조달 문제로 지난 6월 계약이 해지된 바 있다. 이에 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과 SK건설이 지난해 수주한 이란공사 또한 이란제재가 본격화되자 무산될 우려가 더욱 높아졌던 것이다.

남은 SK건설의 경우도, 이란 타브리즈 정유회사 현대화 공사(약 1조7000억원)를 지난해 8월 수주했지만 기본계약 후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이 역시 금융조달이 문제다.

다만, 이들 사업은 공사비용이 투입되지 않아, 건설사들이 직접적인 손해는 보지 않는다.

해외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이들 사업은 모두 착공 전인만큼 계약이 해지되더라도 실질적 피해는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라진성 키움증권 애널리스트 역시 “이번에 계약해지된 현대건설의 경우, 비용이 투입되지 않아 매출 등 실적에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 비어가는 수주곳간…“시장에 발맞춰 해외사업 ‘다각화’ 필요”

하지만, 문제는 건설사들의 수주곳간이 비어간단 점이다. 당장 해외수주가 감소한 것보다 앞으로의 수주가능성이 부족한 것이 더 심각한 문제란 게 해외건설 전문가의 설명이다.

손태홍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시장에서 지정학적·정치적 리스크의 여파가 상당해, 이란은 당분간 수주 기대치가 낮은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건설사들은 그간 중동시장과 석유·화학 플랜트사업을 해외사업 주력으로 삼았는데, 이젠 그것만으론 한계에 부딪히게 됐다. 중동지역은 전통적으로 수주텃밭이었지만 최근 수주가 크게 줄고 있는데다, 이란의 정치적 리스크까지 악재가 겹치게 된 상황이다.

실제 해외건설협회 수주통계를 보면,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우리기업의 중동수주규모는 평균 281억달러였다. 하지만, 이후 2016년 107억달러, 2017년 146억달러로 반토막난 후 올해는 현재까지 85억달러에 그쳤다.

이와 관련, 손 연구위원은 “과거 70·80년대 호황때의 중동시장 모습과 최근의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며 최근 주력시장으로서의 중동시장에 대한 기대가 낮아지고 있음을 설명했다.

이어 “그 변화의 중심엔 ‘저유가’가 있단 분석이 있지만, 국제유가가 지난해보다 25%가 오른 최근에도 이렇다 할 성과는 보이지 않고 있다”고 부연했다.

실제 올초 유가가 오르면서 중동발주가 늘어날 것이란 긍정적 전망이 나왔지만, 11월에 접어든 현재까지 가시적인 성과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젠 국제유가 상승이 곧 발주확대를 의미하진 않는 것이다.

이에 해외시장에 발맞춰 사업의 다각화가 필요하단 제언이 나온다.

손 위원은 “최근 시장이 플러스(+) 사인을 주고 있는 유럽선진국, 미국 인프라시장을 (국내건설사들이) 외면하고 있다”면서 “고유가에도 중동이 과거처럼 플랜트 발주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인만큼, 인프라 투자개발형 사업에 대한 시도가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외건설업계 한 관계자 역시 “2014년까지 660억달러 규모였던 해외건설 수주가 지난해 290억달러까지 떨어졌다”며 “세계시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사업의 다변화와 다각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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