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고혈압약 변경, 제약사 자진회수 등 혼란…'저가약 인센티브 제도' 도마 위

'발암물질 고혈압약' 충격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보험재정 절감에만 혈안이 돼 저가약 처방·조제를 유도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뉴스1>

[한국정책신문=김소희 기자] 발암가능물질이 함유된 '발사르탄' 원료로 만든 고혈압약으로 인한 충격의 여파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의약계는 물론 환자들 사이에서도 보험재정 절감에만 초점이 맞춰진 정부의 정책·제도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환자들의 고혈압약 교체 요구, 제약사들의 자진회수와 판매포기 등 '발암가능물질(N-니트로소디메틸아민, NDMA) 고혈압약' 사태의 후폭풍이 거세다.

이는 지난 7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중국 제지앙 화하이사가 만든 발사르탄 원료에서 2A등급의 발암물질인 N-니트로소디메틸아민이 나와 해당 원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된 219개 품목에 대한 '잠정 판매·제조중지 조치'를 내린 데서 촉발됐다.

현재는 54개 업체, 115개 품목에 대한 판매·제조중지가 유지되고 있으며, 이들 제품의 회수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나머지 46개 업체, 104개 품목의 경우 모든 조치가 해제됐다.

보건복지부는 115개 품목에 한해 남아있는 기간에 대해서만 다른 고혈압약으로 다시 처방·조제(교환 1회에 한정해 본인부담금 0원)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하지만 환자들은 이번에 문제가 된 발사르탄 복제약이 아닌 오리지널약으로 교환하거나 발사르탄과 동일한 ARB(안지오텐신 II 수용체 차단제) 계열의 다른 고혈압약으로 변경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제약사들은 발사르탄 자체의 신뢰하락으로 인한 대체 고혈압약을 물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몇몇 제약사들은 자진회수에 돌입했으며, 판매 자체를 포기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발사르탄 복제약이 문제가 되면서 오리지널약(노바티스의 엑스포지, 디오반)에 대한 주문이 폭주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성분의 고혈압약에 대한 주문도 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선 발사르탄 약물을 파는 게 오히려 손해일 수밖에 없다. 많은 제약사들이 자진회수나 판매포기 등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 발암물질 고혈압약 쇼크가 정부의 보험재정 중심의 정책을 시행할 때부터 예견된 상황으로 정책 개선이 시급하다는 데 뜻이 모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가 보험재정 절감이라는 명목 하에 국민 생명을 담보로 시행하고 있는 저가약 인센티브 제도가 폐지돼야 한다"며 "오리지널약 대비 효능 80~125% 범위 내에 있으면 통과되는 생동성 검사(오리지널과 유효성과 안전성이 얼마나 동등한지 비교하는 시험)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이번 사태는 보험재정 절감만을 목적으로 의사의 처방권과 환자의 건강권을 무시하고 그 약효의 안정성이나 동등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저가 의약품 처방을 강요해온 보건당국의 무책임한 행태에 대한 필연적인 결과"라고 지적했다.

대한임상순환기학회도 "정부는 심평원의 적정성 평가 등을 이유로 오리저널약보다 저가의 복제약 처방을 조장하는 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당국이 나서서 오리지널약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복제약을 처방해 보험재정 절감에 도움을 준 의료기관이나 약국에 인센티브를 주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서도 이 같은 주장에 무게가 실렸다. 한 청원인은 "의사의 처방과 달리 약사가 저가약으로 바꿔 조제하면 차액의 30%를 약사에게 지급하는 대체조제 인센티브를 없애 달라"고 요구했다.

다만, 보건복지부는 발사르탄 논란과 저가약 처방·대체조제 인센티브 제도는 별개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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