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사회 통념상 경제적 가치 지닌 자산' 첫 판례

6일 오후 서울 중구 암호화폐 거래업체 빗썸에 설치된 시세 전광판에 암호화폐 가격이 표시되고 있다. <뉴스1>

[한국정책신문=김희주 기자] 사법부가 가상화폐(암호화폐)를 압수·몰수가 가능한 자산의 한 종류로 판단하면서 가상화폐를 법정 화폐로 인정하지 않는 정부의 가상화폐 정책 방향에도 변화를 불러올지 관심이 집중된다.

12일 검찰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수원지방법원 형사8부(부장판사 하성원)는 불법 음란물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회원 등으로부터 가상화폐의 일종인 비트코인을 대금으로 받은 혐의로 기소된 운영자 안모씨(34)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범죄수익으로 얻은 191.32비트코인을 몰수하고 6억9587만원을 추징하라고 판결했다. 

안씨는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지만 비트코인을 재화로 볼 것인지에 대한 결론이 불분명해 범죄수익에 대한 몰수와 추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2심 재판부가 가상화폐를 '사회 통념상 경제적 가치를 지닌 자산'에 해당한다며 몰수 대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안씨가 음란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받은 비트코인을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범죄수익'으로 봤다. 해당 법률에서는 범죄행위로 생긴 재산 또는 범죄행위의 보수로 얻은 재산은 범죄수익으로 보고 몰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법정 화폐와 달리 물리적 실체가 없는 가상화폐를 경제적 가치, 자산 가치가 있는 재화로 볼 수 있다는 첫 판례가 됐다.

실제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비트코인이 물리적 실체는 없지만 거래소를 통해 환전이 가능하고 가맹점에서 재화나 용역을 살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자산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이번 판결이 비트코인이 법정 화폐냐 아니냐에 대한 판단은 아니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사법부에서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한 첫 판례가 나오면서 가상화폐를 非(비)화폐로 보는 정부의 가상화폐 정책 기조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가상화폐를 '화폐로서의 가치가 없는 투기 상품'으로 규정하며 지난달 30일부터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를 도입했다. 나아가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까지 언급하며 강력한 규제에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가상화폐를 재산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한다면 정부의 가상화폐 정책이 선회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법무법인 율촌 관계자는 "대상 판결은 국내 판례 중에서는 최초로 시중에서 널리 거래되고 있는 가상화폐의 재산적 가치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며 "가상화폐가 몰수의 대상인지 여부에 관해서는 대법원의 최종적인 판단이 내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용자가 개인 지갑에 보유하고 있는 가상화폐 압수, 몰수 등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위해서는 우선 이용자가 개인지갑을 통해 보유하고 있는 가상화폐의 법적 성격에 대한 검토가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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