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가상화폐 거래실명제' 시행 예정…방관하는 정부·당국, 눈치보는 은행

23일 서울 중구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 설치된 시세 전광판에 암호화폐 가격이 표시돼 있다. 이날 금융당국은 '암호화폐 투기근절을 위한 금융부문 대책'을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30일부터 암호화폐 거래는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야 할 수 있고 외국인이나 미성년자는 암호화폐 거래를 할 수 없다. <뉴스1>

[한국정책신문=김희주 기자] 오는 30일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실명제'가 시행되는 가운데 은행들이 "신규 가입자는 받지 않겠다"고 방침을 바꾸면서 시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은행 자율로 하되 문제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정부는 실명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은행에 떠넘기고 은행은 눈치만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가상화폐 거래소와 계약을 맺고 있는 NH농협은행, IBK기업은행, 신한은행 등은 30일 이후에도 가상화폐 거래를 위한 신규 가상계좌를 발급하지 않기로 했다.

농협은행은 빗썸·코인원에, 기업은행은 업비트에, 신한은행은 빗썸·코빗·이야랩스에 각각 가상계좌를 발급해 주고 있다.

이들은 당초 실명확인이 가능한 신(新)가상계좌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신규 고객의 입금도 허용할 계획이었지만 기존 고객만 실명계좌를 발급할 예정이라고 방침을 바꿨다.

신규 계좌는 추후 시장 상황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신규 고객의 거래소 진입이 불가능해진 셈이다.

KB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 광주은행도 실명확인 시스템 구축은 완료했지만 시행 여부와 신규 계좌 개설에 대해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12일 오후 금융당국은 6개 시중은행과 실명거래 점검회의를 갖고 "이달 말 예정대로 실명제를 시행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은행들은 동시에 신규 계좌 개설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지난 23일 금융위원회가 가상화폐 거래소의 금융거래 목적과 자금의 원천을 확인하도록 하는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의 총 책임자를 '은행'으로 지정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이날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내부적으로 위험 관리 없이 가상계좌가 제공되면 은행들이 자금세탁과 관련해 심각한 평판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며 "(가이드를) 지킬 자신이 있을 때만 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됐다.

신규로 고객을 받는 것은 은행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기되 법적 문제가 생길 경우 모든 책임을 은행에게 묻겠다는 것이다.

은행권에서는 정부가 거래소를 직접 규제할 수 없으니 은행을 제재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이에 대한 문제를 은행에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은행 입장에서는 정부와 금융당국이 가상화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신규 계좌 발급에 대한 모든 문제를 은행이 책임져야 한다고 하니 입장이 난처할 수밖에 없다.

은행권 관계자는 "가상화폐 거래실명제를 시행해 달라고 해놓고 이에 대한 모든 문제를 은행이 책임지게 하는 것은 사실상 실명제를 하지 말라는 얘기"라며 "은행에 자율에 맡긴다고 했지만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거래실명제를 놓고 정부과 당국, 은행이 갈지자 행보를 보이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들에게 가고 있다.

시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만큼 정부, 당국의 명확한 입장 확립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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