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되자마자 돌연 선거 불출마 선언…하마평에 최방길·김봉수·홍성국 등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금융투자협회 제공>

[한국정책신문=김희주 기자] 연임이 유력했던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이 "제가 살아온 과정과 이 정부를 끌고 가시는 분들의 '결이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며 돌연 불출마 선언을 했다.

현 정부와의 갈등을 암시한 황 회장의 작심 발언을 놓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금융협회장 인사 관련 발언이 '넛지(nudge) 관치(官治)'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황 회장은 "현직 프리미엄을 누리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하고 싶지 않았다"며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회원사도 많다는 점을 확인해 연임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황 회장은 이날 작심한 듯 "결이 다르다"는 표현을 여러 번 사용하며 현 정부, 정치권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했다.

황 회장은 "현 정부를 꾸리고 운영하시는 분들과 제 가치관이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지난달 말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기업신용공여 한도 200%로 늘리는 방안이 통과됐지만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의 많은 정책을 보면 생각과 다른 것들이 있고 국회 쪽에 건의해도 잘 통하지 않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며 "나쁜 짓도 아니고 (부작용에 대한) 여러 통제장치가 있는데도 고생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척결 대상이나 사형 대상은 아니나 환영받지 못하는 외교용어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에 빗대며 현 정부, 정치권과의 간극을 좁히는 노력에 "피곤하다"고 표현했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황 회장의 연임 도전에 관심이 높았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황 회장은 재도전에 나설 것 같았다. 

황 회장은 지난달 21일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의 마당에서 열린 '사랑의 김치페어' 행사가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선거가 내년 1월 말이라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다. 다른 곳의 인선 등을 봐서 연임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연임 여부는 올해 12월 말에 밝히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황 회장이 12월이 되자마자 돌연 선거 불출마 선언을 한 것을 두고 최종구 위원장의 발언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최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대기업 그룹에 속한 회원사 출신이 그룹의 도움을 받아 회장에 선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히 바 있다.

현재 금융 유관협회 중 대기업 출신 민간 인사가 수장인 곳은 이수창 생명보험협회 회장과 황 회장인데 이 중 연임이 거론된 곳은 금투협뿐이어서 사실상 황 회장을 끌어내리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황 회장은 삼성그룹 내 금융전문가로 꼽히던 인물이다. 1975년 삼성물산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황 회장은 1980년까지 삼성물산 국제금융에서 근무한 뒤 프랑스 파리바은행 차장, 미국 BTC은행 부장 등을 거친 뒤 1989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국제금융팀 담당부장을 역임했다. 

이후 1994년 삼성전자 자금팀장, 1997년 삼성생명 전략기획실장을 거쳐 2001년 삼성증권 사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2015년 금융투자협회장에 당선됐다.

일각에서는 최 위원장의 발언이 황 회장 '찍어내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으로 있을 주요 은행 최고경영자(CEO) 인사에서 정부가 일정의 '인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금융권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넛지 관치'로 진화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최 위원장이 대기업 출신 인사가 협회장 자리에 앉는 것을 경계한 만큼 차기 협회장도 대기업과 관련된 인사가 선임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업계 안팎에서는 차기 회장 후보로 김원규 NH투자증권 대표, 최방길 전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대표, 김봉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 홍성국 전 미래에셋대우 대표 등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특히 최 전 대표는 지난 2015년 금융투자협회장 자리에 도전에 면접 심사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바 있는 데다 최근에는 거래소 이사장 후보로도 나와 정지원 현 이사장과 경합을 벌이기도 했다.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경희대 법학과를 졸업한 최 전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법학과 선배이자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고교 선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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