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후분양제 전격 도입, 득보다 실이 많을 수도...도입 서두르기보다 완충장치 마련 등 목적 실현성 높여야

[한국정책신문=방형국 편집국장] “시장은 영악하다. 정부는 더 교활해야 한다.” 

후분양제 얘기다. 정부가 주택 선분양제를 버리고, 후분양제의 도입을 적극 검토 중이다. 공공부문 주택건설에 후분양제 도입을 먼저 추진하고, 민간부문에선 후분양제를 유도하는 인센티브를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세계적으로 한국에서만 유이하게 시행 중인 선분양제는 지난 1977년 정부가 수도권 등 대도시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집은 턱없이 부족하고, 집을 대규모로 공급할 자본도 없다보니 도입한 제도이다.

청약자들로부터 미리 받은 분양대금으로 건설사들의 자금부담은 덜어주고, 주택공급은 늘리기 위한 취지다. 이 덕에 자본이 없는 중소건설사들도 주택공급에 적극 참여할 수 있었다.

정부는 이번에 후분양제 도입을 거론하면서 부실시공을 막기 위해서라는 논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사실 정직한 논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선분양제의 폐단으로 부실시공과 입주 후 하자 문제 등이 지적되어 온 게 사실이다. 정부도 이를 잘 알고 후분양제의 도입을 언급하며 부실시공 등을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 강조한 듯하다.

문재인 정부의 후분양제 도입 검토는 사실 좀 의외다. 문 정부 부동산 정책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김수현 사회수석이 ‘집값이 오를 때’이라는 단서가 붙긴 하지만 후분양제 도입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수석은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에도 부동산 대책에 깊숙이 관여했던 인물이다. 후분양제의 도입이 아파트 가격을 낮추는 방법이 될 수 없다는 시각을 갖고 있는 그는 올 초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하던 당시에도 그의 후분양제에 대한 인식을 주변에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2일 국회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 후분양제 도입여부를 묻는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의 질의에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하는 공공부문 건설에 후분양제 도입을 추진하겠다"라고 답한 것을 보면 후분양제에 대한 연구가 상당 부분 진행된 것으로 추측된다.

김 장관은 당시 후분양제의 도입을 밝히며 그 배경으로 부실시공 방지 등을 거론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솔직한 발언은 질문자인 정동영 의원 입에서 나왔다. 그는 김 장관의 발언에 대해 "아파트와 집을 부동산 투기의 대상으로 만든 기존 정책에 대한 전면적 개혁이 필요하고 이것이 적폐청산의 시작이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존의 선분양제 정책을 적폐로 본 것이며, 김 장관도 적폐를 입에 담지는 않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선분양제에 대한 시각도 정 의원과 별단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시장은 영악하다. 그래서 시장을 다루는 정부는 시장보다 교활해야 한다. 그러지 못해 낭패를 본 사례가 수두룩하다. 부동산 시장은 정부가 규제를 내놓을 때마다 잠시 잠잠했을 뿐 오히려 더 튀기 일쑤였다. 규제에 대한 반발은 시장 플레이어들의 영악함에서 나온다. 규제로 부동산 시장을 억누르려는 정부는 시장의 영악한 참가자들보다 더 교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주택공급이 줄어들고, 집이 부족해 집값이 뛸 수밖에 없다는 등의 논리가 확산되며 다시 집값이 폭등하고 결국 애꿎은 무주택 서민들만 피눈물을 흘리는 일이 재연될 수 있다. 그래서 정책입안자는 교활해야 한다.

어제 열린 국토의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이헌승 의원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제출 자료를 인용,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건설업체들의 현금흐름이 50% 이상 악화하고, 시행사 또는 건설사가 부담해야 할 추가 건설자금 규모가 연간 40조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또한 실적 소형 주택공급업체의 줄도산으로 주택공급량이 최대 76%까지 감소하고, 건설업체의 이자부담 전가로 분양가가 3~7% 높아져 이에 따른 소비자 이자비용이 93만~1110만원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여기에 그 후유증의 여파로 집값이 크게 뛰어오를 수 개연성도 크다.

정책은 도입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해당 정책의 목적과 취지의 실현에 있다. 당장 도입보다 다시 시간이 들더라도 완충장치도 만들고, 보완대책도 강구해서 정책 목적의 실현성을 높여야 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후분양제 도입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일부이지만 대형 건설사들이 서울 강남 재건축에서 후분양제를 적용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다만 참여정부 때도 후분양제 도입을 시도했다 좌절된 점을 감안하면 서둘렀다가는 되레 큰 코 다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후분양제의 전격적인 도입에 따른 시장의 부작용과 반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부동산 관련 제도 정비 및 민간건설사 등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가 당장 시급하다. 또한 수요자 입장에서도 아파트 청약에서 입주까지의 기간이 대폭 줄게 돼 이를 보완할 금융상품의 개발이 선행되어야 한다.

민간건설업체들에 대한 공공택지 공급이 우선시되는 것은 물론 분양을 실시하는 건설사에 대한 대출보증 관련 규제를 완화해 지원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해야 중소건설업체들로서는 공사기간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

시중은행 등 금융권이 슈퍼갑(甲) 행세를 하고 있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손질이 필요하다. 시행사와 건설사의 손목 비틀기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금융권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관행으로는 후분양제는 100% 실패한다.

이는 다른 부동산 펀드, 리츠 등과 같은 자금 조달 방식도 마찬가지다. 이런 문제들이 선결되지 않은 채 취지가 좋고, 선의(善意)를 갖고 있다 해서 덜컥 후분양제를 도입했다가는 큰 낭패를 볼 가능성이 농후하다.

시장 플레이어들의 영악함을 교활함 없이 어찌 이기려 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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