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준, 자산축소 결정ㆍ연내 금리 추가인상 농후…북한 리스크ㆍ1500조 가계부채 금리인상 부담
EUㆍ일본 주요 통화국도 美에 동참할 듯…외국인 자금 유출 우려에 금리인상 안할 수도 없어

[한국정책신문=방형국 편집국장]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을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다음달부터 보유자산을 축소하기로 한 까닭이다. 

채권을 매각하는 등 보유자산의 축소는 당장 채권 수익률 인상을 야기하는 등 장기적으로 금리인상 압력을 높이게 되며, 이는 9년 간 유지해온 ‘양적완화’의 결별을 의미한다.

1997년 IMF사태,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겪으며 한국 경제는 체질개선을 이뤄 국내외 금리차이로 자본이 오가는 취약성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상수지 흑자로 달러가 대거 유입되는 상황에서 보험사나 증권사 등의 해외 투자가 늘어나면서 국외로 빠져나가는 자금도 이와 비슷해 그런대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북한 리스크가 엄중하고, 주택시장의 불안이 지속되고 있고, 반도체가 견인하는 수출을 제외하고는 경기회복 시그널이 약한 상황에서 금리를 올렸다가는 경제 주체들의 투자심리가 얼어붙을 수 있고,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져 금리를 올리기도 부담스럽고, 외국인 자금의 이탈과 글로벌 금리인상 기조 가능성으로 저금리 기조를 유지할 수도 없다는 데 있다.

외국인 자금의 엑소더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다, 시장과 경제주체 친화적인 통화정책을 수립하기가 마땅치가 않은 것이다.

세계은행 격인 연준이 연내 금리의 추가 인상 가능성을 분명히 남겨 놓았고, 그 영향으로 당장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미 국채수익률이 급등하는 마당에 우리만 손놓고 저금리 기조를 유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연준의 자산축소 소식에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전일 대비 3.7bp(1bp는 0.01%) 오른 2.276%를 나타냈고, 10년물보다 민감한 2년짜리 국채는 수익률이 전날보다 4bp난 급등, 1.442에 거래를 마쳤다. 미 달러 인덱스(유로, 엔, 파운드 등 6개 주요 통화 대비 달러가치 지수)은 전일보다 0.7% 상승한 92.48을 기록했다.

세계는 지금 보이지 않는 통화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Fed의 긴축은 곧 유럽연합과 일본 등 미국을 따라 양적완화 정책을 유지해온 주요 기축통화 국가들의 통화정책 변화를 강요할 수 밖에 없다.

마리오 드라기 ECB(유럽중앙은행) 총재는 이달 통화정책 회의에서 “10월 회의에서는 자산매입 프로그램 등 테이퍼링 계획을 발표하겠다”고 양적완화의 축소를 예고하기도 했다.

연준의 보유자산 축소가 예사롭지 않은 것은 시기가 너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의 체질이 강해졌지만 잇따라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는 ‘북한 리스크’가 워낙 크다.

그렇지 않아도 연준의 긴축기조 선언에 앞서 국내 외환시장에서는 북한 리스크로 인해 지난달 외국인 증권투자자금이 32억5000만 달러나 빠져나갔다. 외국인 자금 동향이 9개월 만에 순유출로 전환한 마당이다. 미국-EU-일본으로 이어지면 글로벌 긴축기조가 본격화하면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연준의 이번 조치로 국내 시장금리는 오를 수밖에 없다. 방향이 문제가 아니라 속도가 문제다. 우려되는 것은 상승 압박이 거세, 상승세에 속도가 붙을 경우 부채상환능력이 취약한 가구를 중심으로 부실이 확대될 개연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난달 말 현재 우리나라의 총 가계부채는 15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금리인상에 동행해 이자가 올라가면 가계의 원리금 상환부담액도 증가한다. 이렇게 되면 가계의 재무건전성이 악화하는 것은 물론 소비감소로 이어져 내수를 크게 위축시키게 된다.

정부는 자산축소 등 연준의 결정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고, 원/달러 환율의 상승은 수출 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지만, ‘북한 리스크’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는 상황은 분명히 통화당국에 적잖은 딜레마다.

한국의 통화당국은 딜레마에 빠져 좌고우면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우리에게 선택권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달 ECB는 테이퍼링(양적완화의 축소)에 착수할 것이고, 일본은행(JOB)도 당장 금리는 건드리지 못하더라도, 채권매입을 줄이는 등 양적완화와 결별을 취할 태세는 갖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으로서는 기준금리 인상의 로드맵을 구성할 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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