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발생 위험요소 산재된 '전통시장'…상인 대다수는 화재공제 미가입

지난 3월 18일 오후 화재 피해를 입은 인천 남동구 소래포구 어시장의 처참한 모습이 보이고 있다. 이날 화재는 오전 1시 36분께 화재가 발생해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전체 332개 점포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좌판과 횟집 등 220개 점포가 전소됐으며, 경찰 추산 6억 5000만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포커스뉴스>

[한국정책신문=김희주 기자] 전통시장 화재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전통시장은 화재에 매우 취약한 곳 중 하나로 최근 잇따라 화재가 발생하고 있지만, 방지책은 여전히 부재하고 '화재공제'와 같은 사고 후 대책만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이마저도 홍보가 부재하고 보험료가 비싼 탓에 상인들은 가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상인들은 엄두도 못내는 실정이다. 

지난 23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경동시장 인근 유사시장에서 불이 나 1시간 반 만에 진화됐다.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총 10곳의 점포로 불이 옮겨붙으며 소방서추산 3600만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이같은 전통시장 화재가 최근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2016년 11월 대구 서문시장 화재, 2017년 1월 여수 수산시장 화재, 2017년 3월 인천 소래포구 어시장 화재 등이 최근 3건의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경동시장 화재까지 하면 2달에 한 번 꼴로 전통시장 화재사고가 난 셈이다.

서울의 광장시장을 가봤다. 광장시장은 비교적 이른 아침임에도 방문객, 외국인 관광객, 상인들이 뒤엉켜 시끌벅적했다. 사람이 대다수 밀집해 있는 먹자골목을 조금만 벗어나면 한복, 이불, 수산물, 각종 잡화 등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했다. 남대문시장도 각종 노점 상인들에 관광객까지 겹쳐 복잡했다.

광장시장과 남대문시장은 서울뿐만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으로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이들 시장은 여타 다른 전통시장들보다는 현대화돼 있다. 그만큼 화재예방에 대한 대책도 잘 돼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지만 예상은 비껴갔다.

화재에 취약하다는 점은 다른 전통시장들과 다르지 않았다. 상점들은 다닥다닥 붙어있고, 불에 타기 쉬운 비닐 천막과 나무로 된 좌판, 엉켜있는 전선들 그리고 수북이 쌓인 먼지들이 당장에라도 불이 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특히 시장 특성상 골목이 좁은 탓에 소방차 진입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고, 기둥마다 소화기가 설치된 중앙 골목을 제외하고, 중앙 골목에서 갈라지는 작은 골목에서는 소화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또 몇몇 소화전들은 각종 이불, 상자 등으로 가려져 있어 긴급 상황 발생 시 당장 사용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화재에 취약한 전통시장에 대한 화재예방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간 전통시장 화재발생 건수는 350건으로 그 피해규모는 48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전통시장은 한 번의 화재로 입는 피해정도가 다른 종류의 시장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국민안전처의 '시장 종류별 화재 건당 피해액' 조사 결과, 전통시장은 건당 1380만원으로 990만원인 상점가, 795만원인 쇼핑센터, 494만원인 백화점보다 더 크게 나타나 전통시장이 화재로 인한 타격이 훨씬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그동안 전통시장 화재안전을 위해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을 진행하고, 전기 및 가스안전점검 등 화재예방을 위한 시도를 해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전통시장의 화재 예방에 정부의 노력과 점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소방 관계자는 "지속적인 소방 설비 점검은 물론 밀집된 점포 구조, 노후화된 전기선 등 전통시장의 화재 위험요소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안전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대구시 중구에 위치한 서문시장 4지구에서 화재가 발생, 건물일부가 붕괴돼 있다. <포커스뉴스>

◆ "화재공제? 그게 뭡니까?"

잇따른 전통시장 화재에 정부는 올해 초 화재사고로 피해가 발생한 경우 이를 보상하기 위한 보장성 화재보험상품, 이른바 '화재공제'를 내놓았다. 상인들이 민간 화재보험에 가입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올해부터 전통시장 및 상점가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전통시장 화재공제사업'을 실시한 것이다.

중소기업청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올해 1월 이같은 전통시장 화재공제 상품을 출시했다. 소진공에 따르면 지난달말까지 1800곳이상의 점포가 가입하고 가입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로 만나본 상인들의 대부분은 화재공재의 필요성은 인식하면서도 '설마 불나겠어?'라는 생각에 가입을 보류하고 있었다. 심지어 연세가 많은 상인들은 화제공제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도 대부분이었다.

광장시장에서 잡화를 파는 김민복씨(62·25년째 운영 중)는 "가뜩이나 경기도 안 좋아서 돈도 잘 못 버는데 그 비싼 보험을 어떻게 들겠나. 가입하고 싶어도 못 하는 걸 어쩌겠나"며 "다른 상인들도 그런 거(화재공제) 비싸서 가입 안 한 사람들 많을 것이다. 그냥 불 안 나게 서로서로 조심하는 방법뿐"이라고 하소연했다.

반찬가게를 하는 서혜순씨(78·30년째 운영 중)은 "화재공제? 화재보험은 아는데 그거랑 같은 것이냐"며 오히려 되묻기도 했다.

'전통시장 화재공제'에 대한 홍보가 거의 돼 있지 않은 데다, 비싼 공제료 탓에 가입하려는 상인들이 많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전통시장 상인들의 보험 가입률(점포 기준)은 2012년 15.4%에서 2014년 22.2%, 2015년 26.6%에 그친다. 

화재공제를 가입한 상인도 만나볼 수 있었다. 남대문시장에서 잡화를 파는 이영훈(34·8년째 운영 중)은 "뉴스에서 계속 시장에서 불이 나는 걸 보고 불안했는데, 정부에서 화재공제 상품을 냈다고 해서 바로 가입했다"면서도 "주변 어르신(상인)들에게도 가입하시라고 제가 직접 말씀드리는데 '보험'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그런지 (화재공제에) 안 들으시려고 하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소진공은 "전통시장 화재공제는 민간보험 대비 납입해야 하는 금액이 저렴하고, 가입금액 한도 내에서 실손보상이 가능하다. 최대 6000만원까지 보상받을 수 있다"며 "상인들의 공제부금으로 재원을 조성하고 정부가 사업비를 지원하기 때문에 저렴한 상품판매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통시장 안전관리를 위해 전통시장 소방·전기·가스 시설물에 대한 사전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있다"며 "전통시장의 사회재난 안전망 구축과 화재발생 시 신속한 복구 및 서민생활안정을 위한 지원에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전통시장의 화재예방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국민안전처는 지난달 26일 '전통시장 화재 근절대책'을 확정, 전국 전통시장의 화재공제 가입을 의무화하기 위해 지자체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화재보험 가입도 독려하기로 했다. 2020년에는 6만 곳(30%)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또 안전관리 사각지대인 전국 무허가·무등록 시장의 전수조사를 5월 초부터 7개월간 실시한 후 지자체 인정시장으로 등록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화재예방 분야에 시장현대화 사업비의 10% 이상을 투자하도록 의무화하기로 했다. 

정치권에서는 화재공제료 일부 지원, 연소확대 차단시설 설치 등 전통시장의 화재예방을 위한 법안들이 다수 발의돼 있다. 다만 그동안 대선 이슈에 밀려 국회 계류 중이다.

지난 2월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형 화재에 취약한 전통시장도 보험 혜택을 볼 수 있는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 일부개정안', 일명 '서문시장·여수시장법'을 대표발의했다. 같은 당 이재정 의원은 지난 1월 소방안전 특별관리시설물로 전통시장을 포함하는 내용의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25일은 '방재의 날'이다. 방재훈련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고, 재해 예방에 대한 국민의 의식을 높이기 위해 제정한 날이다. 방재의 날에 맞게 정부와 국민들은 안전 불감증에서 벗어나 화재뿐만 아니라 각종 재해에 대한 대비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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