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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 장혁의 낯선 온도최근 개봉작 '보통사람'서 안기부 실장 최규남 역 맡아
배우 장혁의 모습. <제공=싸이더스HQ>

장혁은 불덩이 같았다. '추노'(2010년)에서 이대길 역을 맡아 혁명을 꿈꾼 추노꾼의 절절한 내면을 그려낸 게 출발점이었다. 이후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줄곧 가슴에 불을 안은 사내로 살았다. 최근 막을 내린 '보이스'에서도 장혁은 이름처럼 뜨거운 남자 무진혁으로 분해 시종 극을 덥혔다. 

혹자는 비판했다. "장혁의 연기는 늘 똑같다"며 그에게 새로움을 요구했다. 장혁은 반박했다. "작품의 분위기와 캐릭터에 부합한다면 일부러 장점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며 의연하게 대꾸했다. 

어쩌면 최근 개봉작 '보통사람'은 장혁에게서 '신선한 무엇'을 보기를 바랐던 이들에겐 '원했던 답변' 같은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안기부 실장 최규남으로 분한 장혁에게선 이대길도, 무진혁도 찾아보기 어렵다. 차갑게 내려앉은 최규남의 눈에는 지난 10여 년 동안의 장혁에게선 느낄 수 없었던 낯선 온도가 담겨있다. 

"이번에는 연기를 좀 숨겨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최규남이라는 사람 자체가 하나의 시스템처럼 보이길 원했어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고 긴 벽처럼 느껴지길 바랐어요. 그는 감정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에요. '국가'라는 거대한 존재에 대한 신념 혹은 환상이 그를 괴물로 살도록 추동하는 힘이죠. 규남은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사물처럼 바라봐요. 전 규남 또한 하나의 사물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보통사람'의 스틸 이미지 속 장혁의 모습. 극 중 안기부 실장 최규남을 연기했다. <제공=오퍼스픽쳐스>

'보통사람'은 1980년대 후반 정치·사회적 격동기를 그린 시대극이다. 군부 독재 시절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검찰과 안기부의 폭력적인 행태를 담아냄과 동시에 이에 맞서 민주주의를 쟁취해낸 소시민들의 투쟁을 보여준다. 

극 중 장혁은 서울대 법학과 재학 중 사법고시에 합격해 출세 가도를 달린 인물 최규남을 연기했다. '국가의 발전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기획 수사는 물론 사건 조작까지 마다치 않는 냉혈한이다. 장혁은 '의뢰인'(2011년)과 '순수의 시대'(2015년) 이후 세 번째로 악인을 연기했다. 

"안타고니스트(반동인물)에 한 번쯤 도전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어요. 항상 멋들어진 역할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고(웃음). 배우로서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었어요. 이제 40대가 됐는데 앞으로 쓰임이 많은 배우가 될 수 있을지는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믿거든요."

'보통사람'에서 최규남은 결코 매력적이지 않은 악역이다. 적어도 직접 연기한 장혁에 따르면 그렇다. 사실 장혁은 애초에 최규남을 매력적으로 그려낼 생각이 없었다. "매력적으로 보일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될 인물"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최규남을 '시대와 상관없는 인물'로 그려내고 싶었어요. 절대 권력이 존재하는 한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나 있었을 법한 그런 사람으로요. 자신은 '국가를 위한다'지만 결국 그의 행동은 정당하지 못한 것이었죠. 분명한 건 규남도 신념에 의해 움직인 사람이었다는 거예요. 물론 인간 장혁은 절대 공감할 수 없지만요."

영화 '보통사람'의 스틸 이미지 속 장혁의 모습. 극 중 안기부 실장 최규남은 법망을 피해 2010년대에도 판사로 근무한다. <제공=오퍼스픽쳐스>

연기 경력 20년의 장혁이지만 최규남을 연기하는 건 그에게도 큰 도전이었다. 액션 연기로 정평이 난 장혁은 사실 감정 연기에도 탁월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선 굵은 연기를 펼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감정을 폭발시켜 리듬을 만들어내는 건 그의 특기다. 그런 그에게 있어 좀체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최규남이라는 캐릭터는 처음 받아든 숙제였다. 

"최규남은 딱 두 번 감정을 드러내는 데 그건 제가 요구했던 거였어요. 대학 시절 은사에게 '내가 알던 최규남은 어디로 갔냐'는 말을 듣고 한번, 검사 후배에게 '세상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라는 말을 할 때 또 한 번 감정의 동요를 보여요. 청운의 꿈을 안고 법을 공부하던 학생 최규남이 안기부의 스캔들 메이커가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를 고민했어요."

장혁이 생각하는 '보통사람'은 "사회가 요구하는 상식 수준에 걸맞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보통사람이 보통의 사람은 아니란다. "보통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보통사람으로 불릴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보통사람으로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더 절실하게 느껴요.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책임감도 더 커지는 것 같고요. '배우'라는 직업인으로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보통배우'로 살아가기 위해선 얼마나 더 절실하게 노력해야 하는 걸까요."

배우 장혁의 모습. <제공=싸이더스HQ>

한국정책신문  kpinews@kp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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