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 후 사저로 복귀한 지 사흘 째인 지난 1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박 전 대통령 사저로 짐이 들어가고 있다. <출처=포커스뉴스>

[한국정책신문=김희주 기자] 지난 10일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동안 청와대에서 작성된 각종 문건을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해 국가기록원으로 옮기는 절차가 시작됐다.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되면 최장 30년까지 문건을 열람할 수 없는 만큼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증거가 훼손 또는 폐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감시 방법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준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장은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청와대의 대통령 기록물 임의폐기 의혹에 대해 "법에 강력한 처벌규정이 있기 때문에 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다"며 "새 대통령 취임 전까지 대통령기록물이 이관이 되지 않아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르면 대통령기록물을 무단으로 파기하거나 국외로 반출한 경우 10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또 무단으로 은닉하거나 유출, 손상, 멸실한 자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대통령기록관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결정난 지난 10일 청와대와 첫 회의를 열고, 13일에는 '대통령 기록물이 무단 유출되거나 파기되는 등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록물 관리에 각별히 유의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청와대에 보내는 등 이관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수사를 앞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에서 작성된 각종 문건이 유출되거나 훼손, 폐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각종 기록물을 폐기하거나 유출하지 않고 정확히 이관하는 것은 기록물을 생산한 청와대 등의 영역이다. 게다가 의도적으로 청와대 등에서 검찰 수사의 자료가 될 가능성이 있는 자료를 폐기하거나 유출한다고해도, 이를 외부에서 감시할 수단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이 기록관장은 "우리는 (기록물을) 이관한 다음에 보고, 그 이전에는 생산기관에서 법에 따라 준비하고 이관한다"며 "우리는 이관을 받으면 목록과 기록물을 검수해 문제가 생기면 조치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각 생산기관에 무단으로 기록을 폐기하면 안된다는 안내 공문 보냈기 때문에 해당 기관도 이를 충분히 알고 있다"며 "생산기관에서 함부로 법을 어기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기록물법 2조를 보면 '헌법에 따른 대통령권한대행과 헌법·공직선거법에 따른 대통령당선인을 포함한다'고 적시돼 있다. 법에 따라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본다"며 대통령기록물 지정권한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대통령기록물 생산기관인 청와대가 합당한 기록물을 지정했는지, 보호기간을 정하는 절차가 공정한지 등을 검증할 수 있는 별도의 관리·감독 기구도 없다는 점도 지적 사항이다.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지정한 기록물에 대해 15년 범위에서 열람을 제한하는 보호기간을 설정할 수 있고,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기록물은 30년의 범위에서 설정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또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기록물을 비롯해 정무직 공무원의 인사, 개인의 사생활 등 6가지를 비공개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대통령의 사생활 관련 자료가 봉인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에 이 관장은 "대통령기록물법에 어떤 기록물을 지정할 수 있는지 규정한 만큼, 생산기관에서 법에 따라 절차를 밟을 것이다. 외부 검증은 법에 명시돼 있지 않다"며 "기록물을 지정한다는 것은 보호기간 내 열람을 금지한다는 뜻이다. 만약 제3자 등 외부 검증을 거친다면 그것은 지정기록물 자체를 훼손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관장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일을 겪은 만큼, 이번 이관작업을 마친 이후에 법적으로 미비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분석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청와대의 증거인멸 가능성에 대해 강력히 제재하고 나섰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과 청와대가 주도한 국정농단의 증거들이 30년간 봉인될 위기에 처했다"며 "청와대가 특검의 압수수색을 거부했던 것이 대통령기록물법 악용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용서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황 대행에게 지정권한 있다고 유권해석을 했지만 권한대행의 기록물에 대해서만 지정 권한이 있다는 것이 법 취지에 부합한다"며 "검찰은 신속한 청와대 압수수색으로 증거인멸을 막고 국정농단의 실체를 밝히는데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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