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왜곡된 주장, 편협한 책읽기서 비롯돼…독서하고 토론하는 훈련해야 나라의 뿌리 튼튼해져

<출처=한국정책신문DB>

연초 출판서적계에 큰 충격파가 몰아닥쳤다. 2대 대형도매상 송인이 부도를 냈기 때문이다. 문체부가 30억원을 지원합네, 서울시장이 중소기업 긴급 자금을 지원합네 등등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나오는 모양인데 출판 유통을 전혀 모르는 혹은 이해하지 못하는 비전문가 집단의 엉뚱한 제안일 뿐이다.

아직도 너댓달 이상의 어음 쪼가리가 돌아다니고 그 어음을 믿고 배서한 후에 제작비 등으로 돌려온 출판계의 전근대식 관행에 제동을 걸지 않고서는 이런 부도는 언제나 다시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근대적인 유통망을 정비하는 것은 몇몇 출판사나 서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부가 여기에 개입하고 정책 자금을 투입해서라도 출판 유통시장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출판은 한 나라의 지식 산업을 이끌고 가는 중요한 인프라다, 지금 상태로 그냥 두면 참고서 시장만 살아남고 일반 단행본 시장은 궤멸 수준으로 가라앉고 말 것이다. 지식 매커니즘이 파멸직전인데 대선 준비하느라 국가의 백년대계를 방치하고 있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울 뿐이다. 진짜 문제는 독서 시장이 점점 축소되다 못해 괴멸상태가 되고 있어도 어쩌지 못한 채 교육 정책당국이 그대로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원에서 나를 가르친 한 은사는 15주 수업 중에 매주 700~800쪽 짜리 책을 읽어오게 하고 A4 용지 한 쪽에 그 감상과 서평을 축약해서 쓰는 숙제를 매주 내 주었다. 한 학기동안 책을 읽느라 죽을 지경이었지만 수업이 끝날 때쯤 보니까 그동안 엄두도 내지 못했던 전문서적을 15권이나 읽게 되어 뿌듯함마저 느꼈던 경험이 있다. 책을 읽는 실력이 늘어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유럽의 대학원 교수들은 석사 논문을 제자와 준비하면서 보통 50~60권 이상의 책을 읽도록 유도한다. 논문도 수십 편을 읽어야 한다. 유학을 나간 우리 청년들은 매우 열심이라 그 정도는 다 따라하지만 문제는 그 책을 읽고 자기 생각을 정리하여 교수와 토론하고 논쟁하는 데는 너무 서툴고 실력도 빈약하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내 생각을 정리해 상대를 설득하고 논쟁하는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세계와 지식 기반을 손쉽게 받아들을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된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고 토론하는 훈련을 계속 시켜야 한다. 이런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내 주장만 강하게 하고 남의 이야기는 들을 줄도 모르는 지도자들을 양산하게 되는 것이다. 학벌도 좋고 판검사과 장차관까지 한 지도자라 할지라도 골고루 편식하지 않고 다양한 책을 읽지 않으면 편협된 생각을 하기 쉬운데 책을 도무지 접하지 않는 지도자가 계속 해서 이 정부의 지도자로 나온다면 그건 정말 큰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선 시대에 가장 책을 많이 읽은 이로 필자는 신숙주와 류성룡을 꼽는다. 신숙주는 세종대왕이 인정한 독서광이었다. 술을 한 잔 걸치는 날조차도 신숙주는 퇴청하지 않고 자기 숙소에서 책을 한 권 읽고서야 집으로 갔다고 한다. 세종대왕이 진짜 독서광인지 환관을 통해 확인하고서는 잠이든 신숙주에게 돈피 갖옷을 덮어주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7개 국어를 독학으로 익혔고 일본 전문가로 '해동제국기'를 남겨 일본의 야성을 조심하라고 후대에 경고했다. 

류성룡도 금수저 출신의 문관이지만 그는 동서고금의 많은 책을 읽은 나머지 전술전략에 관한 병법서 '증손전수방략(增損戰守方略)'를 이순신에게 전달했는데 이순신은 이 책을 읽고 육전과 수전 전술에 감탄하며 지혜를 얻었다고 했다. 그가 남긴 요새방어와 진지 구축에 대한 이론을 읽고 있으면 마치 몇 백 번의 전쟁에서 승리한 대장군의 전술론을 읽는 기분이 든다. 이야말로 수많은 독서에서  얻은 지혜의 총합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제안한다. 대선주자들의 실력을 평가할 때, 그들이 평생 읽은 책 목록을 제출하라면 어떨까? 관훈클럽 같은 곳에서 그들이 읽은 책에 대해 논해보라는 이야기를 던지면 대선주자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그런 공연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다음 대통령은 제발 책 좀 읽어서 그저 아무 데나 "그...저...이..."하며 시간을 끌고 머리를 굴리는 인물은 그만 봤으면 좋겠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본 메릴 스트립의 연설을 본 후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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