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이슈②] 권력 의회로 이동, '개악' 우려 목소리 높아…의원 기득권 포기하고 비례의석 확대해야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출처=청와대 홈페이지>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지난 5일 첫 회의를 개최하며 정치권의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치권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기하고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를 도입해 행정부에 집중돼 있는 권력을 분산시키고 입법부의 힘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개헌에 대해서는 찬성하면서도 선거제도 개혁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권력구조만 개편하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개악'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고, 자칫 '제왕적 총리'를 불러올 수 있음을 경계한다. 그러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비례의석 확대가 개헌의 전제가 돼야 한다고 제언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최근 개헌 논의의 핵심은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시키는 이른바 '권력분산형' 개헌을 하자는 것이다.

정치권의 주장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헌법상 대통령과 행정부에게 예산 편성권·증액 동의권·인사권·법안 제출권 등 미국 대통령과 행정부보다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고, 군사독재의 유산으로 인해 검찰 등 권력기관이 정치권력의 통치수단화되는 등 독립성과 중립성이 결여된 상태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미국은 예산편성권이 의회에 있고 행정부의 법안 제출권이 없으며, 차관보급 이상 고위공직자는 모두 인사청문회 대상이다.

이에 대통령제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예산권, 인사권 등 대통령과 행정부의 권한을 분산·제한하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정치권은 주장한다. 특히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등 주로 권력의 중심을 의회로 이동시키는 권력분산형 개헌이 주류를 이룬다.

일본 국회의사당 내부 전경. <출처=The National Diet of Japan>

◆ 선거제도 개혁 없는 개헌은 '개악'…'제왕적 총리' 낳을 수도

전문가들은 선거제도의 개혁 없는 개헌은 권력구조 '분산'이 아닌 의회로의 권력구조 '이동'을 낳고, '개혁'이 아닌 '개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이므로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를 택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치시스템에 대한 오해에서 기반한 주장"이라며 "오히려 의원내각제에서는 임기제한 없이 장기집권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권력집중 현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과 일본의 사례가 하 대표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영국의 대처 수상이나 일본의 아베 총리가 대통령보다 권한이 덜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대처 수상의 보수당은 단 한 번도 50% 이상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단순다수 소선거구제 덕분에 늘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차지했다. 한국처럼 지역구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붙이는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일본에서는 2014년 중의원선거에서 아베 총리가 속한 연립여당이 46%를 득표한 반면 의석은 68%를 차지했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장도 "선거제도와 의회구조에 따라서는 입법, 행정권을 장악한 제왕적 총리의 장기집권이 가능하다"며 "의회 내적으로 권력이 분산되는 선거제도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권력분산형 개헌주장은 단지 대통령의 권력을 의회로 이동시키는 의회 권력 강화론이며, 이는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이 권력을 잡기 위한 방편으로 주장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고 강조했다. 

즉 권력분산형 개헌에 진정성이 있다면 기존 정당의 기득권, 지역주의에 기초한 국회의원의 지역구 기득권을 내려놓는 정치권의 기득권 포기가 전제돼야 한다는 얘기다.

<제공=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하고 비례 확대해야"

전문가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비례의석 확대를 주장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와 비례대표가 반반으로 정당 득표율을 반영해 표의 등가성을 최대한 반영한 독일식 선거제도다. 2015년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역구 200석, 비례대표 100석으로 하되 권역별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학 교수는 "득표율에 비례해서 의석수를 배분하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그래야 거대보수지역정당들의 담합체제를 깨고 다양한 사회세력들이 제도정치로 나아가 거리가 아닌 제도 내에서 갈등 등을 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근용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는 "대통령·국회의원 선거제도가 국민의 다양성과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찬성하면서도 "다만 지역구 의석을 50석 내외를 줄여 200석으로 하자는 것은 총 의석수를 300석으로 제한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안인지 의문"이라며 의원정수를 350명까지 늘릴 것을 주문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선거에서 유권자의 선택이 사표가 되지 않고 온전히 의석으로 전환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더 다양한 정당, 더 다양한 대표들을 가질 수 있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면서도 "최소한 현재 지역선거구 의석수를 줄이지 않는 선에서 제도를 디자인하려면 지역선거구 240석 대 비례의석 120석 정도의 수준까지는 보장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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