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 까다롭고 정치권 무관심으로 있으나마나…국회, 제도 개선 노력 있었지만 대부분 흐지부지

지난 7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 최성 고양시장, 이용수, 박옥선, 이옥선 할머니 등이 위안부 특별법 입법 청원 기자회견을 마친 뒤 민원실을 찾아 청원서를 제출하고 있다. <출처=포커스뉴스>

헌법 26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청원에 대해 심사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인 '청구권'을 헌법에 명시해둔 것이다.

이처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떠한 제도, 정책, 행정 등에 의해 불이익을 당했거나 불합리한 처분을 받았을 경우 개선·고발 등을 할 수 있는 청원제도가 마련돼 있다.

청원제도 중 행정 청원은 행정심판, 행정소송 등 비교적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그러나 국회의 입법 청원은 국민들이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정치권의 무관심으로 활성화돼 있지 않는 상태다.

헌법이 규정한 청원권을 보장하고 국회의 민의 전달창구 역할을 살리기 위해 청원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 이유다.

◆ 유명무실한 청원제도…"청원소위 열 여유 없어"

29일 기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대 국회에 제출된 청원은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 등을 포함해 총 44건으로,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1호 지정'이 20대 국회 1호 청원으로 등록돼 있다. 

국회 청원접수는 지난 16대 765건을 기점으로 17대 432건, 18대 272건, 19대 227건으로 급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논의되지 못한 채 폐기되는 청원들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국회 채택과 불부의, 철회 등을 모두 포함한 청원 처리율은 지난 13대에서는 64%가 넘었지만 19대 때는 22%로 3분의 1 가량 줄었다. 청원 10건 중 7건 이상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자동폐기 처분된 것이다.

19대 국회의 청원 227건 중 통과된 안건은 '국립현충원 일본 수종 제거', '울산 혁신도시의 고가차도(서동고가차도) 건설 반대 및 평면교차로, 지하차도 건설 촉구' 등 2건에 불과하다.

18대 국회 역시 접수된 청원 272건 중 통과된 안건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시행규칙 개정', '장애인의 지하철 이동편의 개선', '호국 의병의 날 기념일 제정' 등 3건 뿐이다.

17대 국회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432건의 청원 중 본회의를 통과한 청원은 4건에 불과하다. '비정규직을 위한 보호입법', '이자제한법 제정' 등 316건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폐기됐다.

이처럼 청원실적이 저조한 이유는 정치권의 무관심 때문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16개 상임위원회 안에는 상정된 법을 심사하는 법안심사소위, 예산을 심사하는 예산결산심사소위, 그리고 제출된 청원을 심사하는 청원심사소위가 있다.

국회법 및 국회청원심사규칙에 따르면 국회는 각 상임위 내에 청원심사소위원회를 두고 국민들의 청원을 처리할 의무가 있지만 임기 내내 청원심사소위를 한번도 열지 않는 상임위가 상당하다.

한 여당 의원실 관계자는 "각 상임위원회에 청원심사소위가 있지만 실제로 개최되는 일은 보기 힘들다"며 "발의된 법안들을 심사하는 것도 바쁜데 청원심사소위까지 열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청원 중에는 법 개정을 요구하는 입법청원이 주를 이루는데 이같은 입법청원은 의원발의나 정부발의에 의한 법보다 전문성이 떨어지는데다 기존의 법과 충돌하거나 집단 이기주의적인 제안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보통 청원소위를 통한 법 개정보다는 소개 의원실에서 청원 내용을 포함해 개정안을 발의하는 방안이 논의될 가능성은 훨신 크다"고 밝혔다.

◆ 절차 복잡한 청원제도…국회, 청원제도 개선 노력 있었지만 무용지물

현행 청원법은 ▲피해의 구제 ▲공무원의 위법·부당한 행위에 대한 시정·징계 ▲법률·명령·조례·규칙 등의 제정·개정 또는 폐지 ▲공공의 제도 또는 시설의 운영 ▲그 밖에 국가기관 등의 권한에 속하는 사항 등에 대해 청원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국회에 청원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관련 상임위 의원으로부터 청원소개의견서를 받아 청원제출용지, 청원서와 함께 국회 사무처 의정종합지원센터에 제출하면 된다. 즉 청원서를 제출하고 싶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의원실의 검토를 거쳐 의원실의 소개로 이뤄진다.

국회에 제출된 청원들은 보통 법 개정, 제정안 입법 등을 요구하는 협회, 단체의 주장이나 정부에 어떤 행정 처리를 요구하는 지역민원 등이 담긴다.

제출된 청원은 내용에 따라 해당 상임위로 회부되고, 소관 위원회는 청원심사소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청원을 상정·의결 후 본회의에 부의하거나 적절치 않다고 판단될 경우 폐기한다. 이후 본회의에서 심의를 거쳐 정부로 이송, 국정에 반영된다. 청원 처리 결과는 90일 이내 청원인에게 통지된다. 최대 60일, 1회에 한해 처리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이처럼 국민이 제도나 정책 등에 대해 부당한 처분을 받거나 피해를 입은 경우 국가에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국민들에게 홍보가 잘 돼있지 않거나 그 절차가 복잡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한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사실 국회에 청원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들이 대다수인데다가 보통 의원실은 청원을 제출하기 보단 지역구 민원을 직접 받는 편이다"며 "청원제도 외에 '신문고'라는 제도가 그나마 잘 알려져 있지만 이마저도 실효성이 미미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국회 차원에서 국민청원권을 보장하기 위해 청원제도에 대한 법적 보완과 개선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19대에서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김경협, 이학영 의원 등이 청원제도 개선을 골자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소관 상임위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못된 채 폐기됐다.

특히 국회에 청원서를 제출할 때 '국회의원의 소개를 얻어'라는 문구는 삭제하고, 국회에 청원심사위원회를 상설하도록 해 이전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심사절차를 구축하도록 한 방안도 제안된 바 있다.

현재 20대 국회에서는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의 대표발의로 청원이 위원회에 회부된 후 30일이 경과하면 자동으로 상정된 것으로 간주하도록 한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대안반영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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