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절과 의리, 청렴과 부끄러움을 아는 태도가 없는 사람들…대통령과 가신들이 답할 차례다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내려와라 박근혜 제5차 범국민행동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2차 청와대행진에 나서면서 세종대왕상을 지나가고 있다. <출처=포커스뉴스>

물이 엎질러진 박근혜 정부에서 누구는 물러나고 누구는 버티고 있다. 임명권자와 피임명자들의 지금 속내는 어떨까? 솔직히 모르겠다. 뭐 이런 경우가 있나 싶지만 염치란 것이 가르쳐서 되는 것은 아니니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갖은 억측과 분석이 난무하는 가운데 필자는 역사적인 인물의 물러나는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퇴계 이황(1501~1570)은 조정에서 140여 직종에 계속해서 임명됐으나 이 가운데 79번을 사임했다. 사임한 것만으로 따지자면 그는 조선 관료들 중 단연 톱이다. 이 가운데 30회는 수리됐지만 49회는 마지못해 자리를 맡았다. 

명종 등 조선의 왕들은 이황으로부터 꽉 막힌 정국의 정치와 혼란스런 정가를 해소할 비책을 구하려 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자리를 사임하는 물러남의 극한을 선보였다. 그는 왜 한사코 명예와 권력이 보장된 벼슬자리를 물러나고 싶어만 했던 것일까?

조선 중기, 정치가 혼탁하던 시대, 반대를 위한 반대가 판을 치던 시절에 이황은 '무욕과 물러섬'이라는 정치적 선택으로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사대부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학봉 김성일이 기록한 그의 삶을 읽어보면 조선 사대부에 미친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퇴계 선생의 나아가기를 어렵게 하고 물러나기를 쉽게 한 지조는 비록 분(賁)과 육(育)(중국의 孟賁과 夏育)과 같은 자라도 빼앗지 못할 것이다. 근세의 사대부들은 독서를 하면 다만 과거합격에서 오는 이익만 알고 성현의 학문이 있다는 것을 모르며, 벼슬을 살면 오직 임금의 사랑이나 국록의 영화만 알아서 깨끗이 물러나는 절개를 몰라 그저 눈치코치도 없이 되었다. 그러나 한 번 선생이 몸을 일으키자 사대부 되는 자는 비로소 사람됨의 길이 저기에 있지 않고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국민들은 지금도 그런 인물들이 공직자 되기를 간절히 원할 것이다. 그러므로 공직자로 임명받았을 때 그 일에 합당한 자격을 지니지 않았다면 마땅히 사양해야 도리다.  

무릇 임명직 공직자든 선출직 공직자든 염치가 있어야 한다. 관포지교로 유명한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 관중(管仲)이 지은 목민편(牧民編)에 나라를 버티게 하는 네 가지 덕목이 있다고 했다. 바로 예의염치로 '예절과 의리, 청렴과 부끄러움을 아는 태도'를 말한다. 이를 사유(四維)라고 하며 사유가 없는 것은 짐승과 같고 나라가 망하는 길이라고 했다. 그러니 우리는 망하는 지름길로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조선에서도 염치를 아는 것을 사대부의 필수 덕목이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조선 때보다 훨씬 개화했다고 믿고 있고 선진문명화를 이루었다고 자부하는 21세기에 이 무슨 염치없는 일이란 말인가? 대통령은 문제가 터져서 결국 그 염치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 그 주변에서 온갖 영화를 누려온 자들은 지금이라도 물러나야 하지 않을까? 

박기현 <한양대 국제문화대학 겸임교수>

대통령부터 스스로 물러나려 들지 않으니 국민들의 시위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든 결판이 날 것이다. 평화적으로 염치를 찾아가며 기회를 주고 기다리려니 속이 터지고 풍전등화격인 나라의 장래가 걱정된다. 

정조 때 신망 있는 신료였던 영의정 김상철은 정조에게 이렇게 상소를 올렸다.

"시들어진 기풍을 어떻게 분발시키며, 없어진 염치를 어떻게 격려하고 해이된 기강을 어떻게 부식시키고 꽉 막힌 언로를 어떻게 개도하느냐는 임금이 어떻게 인도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대통령과 가신들이 염치가 있다면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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