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이라는 유령이 대한민국을 배회하고 있다. 그의 손길이 닿은 자리에는 곪디곪은 한국 사회의 병폐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정치와 경제가 꽉 들러붙어 서로를 갉아먹는 형태의 '정경유착'도 그중 하나다.

그가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미르·K스포츠 두 재단에 불과 며칠 새 774억원에 달하는 모금이 모였다.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19개 그룹이 각각 수억~수백억원 씩을 넘겼다.

당시 기업들의 '수금창구' 역할을 했던 전경련의 이승철 상근부회장은 국정감사에서 "자발적 모금이었다"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며칠 뒤 검찰 조사에선 안종범 청와대 전 정책조정수석이 모금을 지시했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지난 1983년 '일해재단 사건'과 판박이다.

이뿐만 아니다. 이번 정부들어 청년희망펀드 880억원, 지능정보기술연구원 210억원, 한국인터넷광고재단 200억원, 중소상공인희망재단 100억원 등을 모두 기업에서 긁어 모았다.

정반대의 모습도 있다. 기업이 적극적으로 이권이나 특혜를 챙기기 위해 정권에 돈을 대는 식이다. 사례는 수없이 많다. '로비'는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정경유착이 만성화하는 가운데 정치가 상실한 '대의(大義)'의 빈 공간을 '자본'이 차지해가고 있다. 경제 또한 로비·모금 등에 할애하는 비용만큼 혁신·개발·연구 등에 소홀하게 되는 등 사실상 기능부전의 상태로 전락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이 정도밖에 안될까. 지금이 5공 시대라면 그려러니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국민들이 피땀흘려 발전시킨 현재의 대한민국에 아직도 정경유착이 만연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최순실 사건'은 우리 경제의 후진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답답하기 그지 없다. 그렇다고 그냥 불구경을 하기에는 지금까지 노력해 온 국민들의 노력이 아깝다. 만약 지금 상태로 방치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이번 사건을 통해 여러 문제들이 불거진 만큼 차제에 정경유착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어야 한다.

정경유착을 끊기 위해서는 우선 법·제도적인 방지책이 필요하다. 한 발 더 나아가 '정치자금법'도 보다 강력한 수위로 개정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정부에 쏠린 권한 중 불필요한 부분도 조정할 필요도 있다. 그래야만 '자발적이지만 사실은 비자발적인' 모금이라는 우스꽝스러운 행태를 없앨 수 있다.

기업의 노력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투명 경영이 우선이다. 지배구조 개선 및 의사결정 등 모든 과정에서 투명화하려는 노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번 미르·K스포츠 재단에 돈을 낸 53개 기업 중 이사회 의결이나 투명경영위 등 하부위원회에 보고과정을 거친 곳은 4곳뿐이라 한다. 이 같은 후진적 모습을 더이상 보여서는 안된다. 그래야만 기업이 살고, 정경유착이라는 잘못된 병폐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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