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국회가 추천한 총리를 임명해달라는 야권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제 고민은 여야 정치권의 몫으로 던져졌다. 야권에서는 박 대통령의 2선 후퇴 등 권력포기 의지가 불분명하다며 이를 거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그동안 여야 모두 거국 중립내각 구성의 필요성을 제기해 왔기 때문에 새 총리 임명을 통한 정국수습엔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문제는 총리에게 얼마만큼의 권한을 주느냐이다.

박 대통령이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에게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하는 권한을 주겠다고 밝혔지만, 무엇보다 '통할'이라는 말이 권한을 어디까지 넘기겠다는 뜻인지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하다. 헌법 86조와 87조는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고 행정에 관해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하며, 국무위원의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지닌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현재 야당이 요구하는 총리의 권한은 헌법의 규정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야당은 박 대통령이 언급한 총리의 실질적 내각통할은 전권을 부여받은 거국내각의 총리가 아닌 책임총리 정도의 개념이라고 비판한다. 그래서 새 총리가 국무위원에 대해 임명제청이나 해임건의가 아니라 실질적 임면권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최종 결재단계에서 대통령의 서명이 필요하다고 해도, 총리가 직접 고른 인사들로 내각이 구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이뤄지려면, 대통령이 검찰총장의 임명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거국 중립내각의 성격은 크게 과도정부와 책임총리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신임 총리가 일종의 과도정부를 꾸리고 대통령은 전권을 넘긴 채 사실상 퇴진에 가까운 2선 후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여기에는 조기 대선론도 포함된다. 이는 야권이 선호하는 방법이다. 반면, 국방, 외교 등 외치(外治)는 대통령에게 그대로 맡기고 내치(內治)를 전담하는 책임총리가 알맞다는 목소리도 있다. 주로 여권 인사들이 이런 견해에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야권에서는 왠지 찜찜해하는 분위기가 감지가 되고 있다. 이번 박 대통령의 제안은 총리인선문제로 국면을 전환시키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기 때문에 국민이 요구하는 2선 후퇴 약속을 꼭 받아야만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국회에 준 총리 추천권을 빌미로 향후 영수회담도 하고 대화를 이어가자는 시간 끌기 포석이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던진 '프레임의 덫'에 걸렸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야권은 대통령이 자신들의 요구대로 실제 전권을 내려놓고 2선으로 퇴진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단계적 퇴진운동 카드를 철회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일부 야권지지자들이 '하야운동'에 고삐를 죄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것 역시 야당지도부에게는 부담이다. 그러나 야권 내에서는 자칫 이번 계속 '퇴진' 주장을 들고 강경대응을 할 경우에는 여론의 역풍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하지만 실기(失機)를 하지 않으려면 하루빨리 명확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이번 주말 사상 최대 규모의 촛불집회가 예상되고 있다.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보수진영이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자칫 충돌이라도 하게 되면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는 민의가 또 다시 왜곡될 수도 있다. 그러기 전에 이번 사태의 몸통인 박 대통령은 시민들의 분노를 달래고 탈당과 2선 후퇴를 포함한 총리의 권한에 대한 명확한 입장표명을 해야 한다. 어딘지 모르게 또 다시 공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진솔하게 고백해야한다. 그것만이 실낱같은 자존심과 명예를 지킬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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