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라 불리는 일련의 국정농단사태가 사실로 확인되면서 전국이 또 다시 촛불을 밝히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는 수만 명의 군중이 참석한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 하야와 엄정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는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고 처음 열린 주말집회여서 향후 이어질 집회의 양상과 규모를 가늠할 중요한 계기로 관심을 끌었다.

경찰은 애초 3000∼4000명 참가를 예상했으나 이날 참가자는 경찰추산으로도 예상인원을 배 이상 웃돌았다. 정부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질 만큼 국민적 공분이 컸던 까닭에 집회장소인 청계광장이 가득 차 주변도로까지 인파가 빼곡하게 운집했다. 더불어 울산, 부산, 광주, 전주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집회가 열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분노라는 공통의 감정에서 기인한 국민대통합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이 같은 움직임은 해외에서도 다를 바가 없다. 미주희망연대 등 54개국의 6000명이 넘는 재외동포들도 박 대통령 하야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조국이 나라의 품격을 잃은 채 전 세계 조롱거리가 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창피하다고 전한다. 게다가 지성의 전당인 대학가에서도 학생들과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여차하면 거리로 뛰쳐나올 태세다.

이렇듯 정권의 운명이 풍전등화인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 일괄사표 제출'이라는 카드를 빼들었다. 청와대 인적쇄신으로 '최순실 게이트'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대국민사과 이후 지지율이 되레 더 떨어진 데다 참모진 교체카드 역시 국민과 정치권의 요구가 빗발친 뒤에야 마지못해 끌려가듯 꺼내들면서 국면전환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라는 평가다.

대상자로는 '최순실 게이트'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됐거나 야당으로부터 사퇴공세를 받고 있는 참모들이 꼽힌다. 이원종 비서실장과 우병우 민정수석,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등이 그 대상이며 쇄신의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 폭을 더 넓힐 것으로 보인다. 정호성 부속비서관, 이재만 총무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은 수석비서관이 아니라 일괄사표대상은 아니지만 사실상 정리대상이라는 관측이다.

반면 국민들의 분노어린 요구에 저항하는 또 다른 움직임들도 감지되고 있다. 청와대는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청와대 인사의 검찰의 압수수색에 반발하며 사실상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또한 짜 맞추기를 하듯 '최순실 게이트' 핵심인물들도 일제히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인적쇄신 착수에 앞서 숨어있던 관련자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내고 해명에 나서는 등 사태가 묘하게 흐르는 모습이다.

긴급 체포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던 K스포츠재단 설립에 관여한 고영태씨는 해외에서 귀국해 검찰에 자진출두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또 '비선실세' 의혹을 최초로 폭로한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도 검찰에 출석 조사를 받다 신병을 이유로 귀가했다. 의혹 당사자인 최순실씨 역시 변호인을 통해 검찰이 소환하면 출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31일 전격 귀국했다. 또 다른 핵심인 차은택 전 감독도 이번 주 귀국 검찰조사를 받겠다고 한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거대한 회로가 돌아가는 느낌'이라며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모두가 잠적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다 동시에 검찰수사에 응하겠다고 하면서 뭔가 권력의 시나리오가 작동하는 것 같다는 의혹의 시선을 보이고 있다. 어쩌면 이들이 누군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면서 사전모의를 한 뒤 최소한의 처벌만 감수하도록 입을 맞췄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민의를 거역하고는 국민의 심판을 결코 피할 수 없다는 역사의 흐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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