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mir)는 동양과 서양에서 전설 속 큰 동물인 한자말 '용'(龍)과 영어 '드래곤'(Dragon)을 다듬은 순수 우리말이다. 예로부터 용은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왔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왕조시대의 절대 권력자 왕을 상징해 왔으며 지금도 대권후보들을 잠룡이라 부르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의도적이거나 우연의 일치일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재단이 정권이 개입한 권력형 비리의혹에 휩싸이면서 사회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대 정권치고 권력형 비리가 도마에 오르며 눈물을 삼키지 않은 정권은 거의 없다.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은 물론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 등도 임기 말 본인과 정권 주변 친인척의 권력형 비리로 나라를 시끄럽게 했다. 국민들이 그런 정권에 식상하고 있던 차에 미혼이고 첫 여성대통령인 박근혜 정권이 출범하면서 국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취임 초기부터 철저한 친인척 관리를 보이면서 이 예상은 적중하는 듯 했다.

하지만 현 정권 역시 미르, K스포츠재단을 진원으로 한 권력형 비리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정황들이 잇달아 드러나고 있다. 각종 의혹이 봇물처럼 쏟아지자 재단설립과 재원의 모금을 주도한 전경련은 각종 의혹이 제기된 '샴쌍둥이'와 같은 두 재단을 해산하고 문화와 체육을 아우르는 새로운 통합재단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재단세탁 시도' 내지 '증거인멸'을 위한 꼼수라는 의견이 나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해외에서도 재단의 성격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수도권 상공회의소(CCI Paris Ile-de-France)는 미르재단을 단순 민간재단이 아닌 '한국정부가 주도한 재단'이라고 소개한 것으로 확인됐다. 두 나라의 경제단체 사이 업무협약에 앞서 파리-수도권 상공회의소가 미르재단과도 협약을 맺었다는 내용이다. 그동안 전경련이 앞장서 민간기업 주도로 창립했다는 주장과 대치되는 대목이라 또 다른 논란이 예고되고 있다.

게다가 미르재단을 주도적으로 설립한 주체는 전경련 말고 청와대도 포함돼 있음을 보여주는 '대한민국 국가브랜드 제고를 위한 정부와 재계가 주관하는 법인설립 추진'이라는 내용의 문건도 나왔다. 한편에서는 두 재단에 거액을 출연한 재벌기업이 관련서류를 일제히 파기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실제로 미르재단에선 임직원들이 대량으로 파기한 서류더미가 목격되기도 했다. 이는 두 재단의 모금과 운영과정에서 드러난 위법행위를 은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경제 활성화를 한다며 대기업 규제완화를 줄기차게 추진해 왔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성과연동제 도입도 '쉬운 해고'를 원하는 대기업논리가 반영된 결과라는 지적이다. 현 정권은 세계적인 추세인 대기업 법인세 인상에도 팔을 걷어 부치고 반대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미르, K스포츠 두 재단에 낸 거액의 성금이 이런 친(親)기업 정책의 대가로 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북악산에는 지난 역대 정권부터 지금까지 청와대의 상징인 봉황 대신 조악한 용(龍) 미르가 둥지를 틀고 날아다니며 돈을 빨아들인다는 전설과 같은 얘기들이 전해진다. 하지만 역사는 항상 권력형 비리라는 치부를 감추기 위한 권력남용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으며,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게 하는 것을 보여준다. 국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깨어 있다면 이를 막을 권력은 어디에도 없으며 결국에는 스스로 무너지고 말 것이다.

국민들은 또 다시 권력형 비리의혹으로 용이 눈물을 흘리는 역사의 되풀이를 원하지 않는다. 최근 국회의 국감을 보이콧하던 집권여당도 되돌아 왔다. 국회는 여야가 따로 없이 국민들의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장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최근 발효된 청렴한 사회를 꿈꾸는 '김영란법'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젠 더 이상 '용의 눈물'이라는 비극적인 전설을 이어가서는 안 되며 이번에 끝장을 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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